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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민심, 그리고 이상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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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 의원은 아마 기억도 못할 거다. 별 뜻을 가지고 한 말도 아니었을 터다. 하지만 그와 일면식 없는 사람들조차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게 할 만큼 그는 강력하다. 권력에 예민한 정치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최근 한나라당 경선판을 달군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단적인 예다. 이 의원은 자신과 가까운 의원이 출마한다기에 “잘 해보라”고 덕담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의 사람들이 해당 후보를 지원한 것도 각자의 뜻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판도는 크게 출렁댔다. 불과 얼마 전 경주 재선거 때도 그는 논란에 휩싸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측근이 재도전할 수 있었던 게 그의 덕분이라고 여겼다.

이 의원은 이런 상황을 곤혹스러워한다. “모든 걸 나한테 연결해 비난하니 너무 우울하고 피곤하다”고 말한다. 묘한 건 그가 해명할 일이 빈번해지는데 그걸 믿는 사람은 점차 줄어간다는 거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더니 요새는 ‘만사형결(萬事兄決)’이라고들 한다. 모든 게 형을 통하면 된다고 했던 게 형이 결정한다는 단계까지 간 것이다.

상당 부분은 그의 말대로 오해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의미 없는데 있는 듯 여겨지고, 원로로서 동생을 위하는 마음에 의견을 낸 건데 지시 또는 명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식 말이다. 그의 뜻인 양 호가호위하거나 그의 선의를 악용한 경우도 제법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와 그가 직접 간여한 일까지 뭉뚱그려져 지금의 이미지가 만들어졌을 수 있다. 그래서 그가 “20년간 다섯 번 당직을 하면서도 말이 안 났는데 더 엄격하게 지내는 지금 더 구설에 오르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할 여지도 있다. 그의 말이 정권 초기보다 덜 받아들여진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세상이, 민심이 그를 실세로 여기는 한 그는 실세란 점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행동거지 하나가 지금처럼 소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민심은 민심대로 냉정하게 그를 지켜볼 거다. 비공식 권력에 더욱 엄격한 것 역시 민심의 속성인 까닭이다. 지금껏 그래 왔다.

그가 노건평씨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잘못하면 2∼3년은 그냥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4∼5년 지나면 다 드러난다는 거 안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또 내가 조심하더라도 사고가 날 수 있는 것도 안다.” 실제 그는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민심의 기류가 바뀔까. 그와, 이명박 대통령이 깊게 고심할 대목이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