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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북핵, 깜짝 놀랄 대가" 나오기까지…한·미 긴박했던 두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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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9일 오후 6시 외교부 청사.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얼마나 많은 것이 가능할지 깜짝 놀랄 것이다." 당일치기로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한마디가 큰 궁금증을 남겼다. "도대체 뭐를 어떻게 했기에…." 이에 앞선 오후 4시 청와대. 라이스 보좌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배석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들을 치켜세운다. "저 분들과 북핵 문제를 협조해서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잘해 나갔으면 좋겠다."

정부 당국자는 "그가 '깜짝 놀랄 것'이라고 한 것은 지난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포괄적 북핵 해법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스스로 '전환기적 제안'이라고 한 이번 북핵 해법이 나오기까진 한.미 간에 한달여에 걸친 외교 드라마가 숨어 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든 미국의 주한미군 일부 이라크 차출 계획과 김선일씨 피살 사건 속에서 북핵 문제의 새 국면을 가져온 새 북핵 해법 마련 과정은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한.미 양국의 '2인 3각 행보'가 시작된 것은 한달반 전이다. 5월 17일 오후 8시30분 청와대와 백악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직 복귀를 축하하고, 주한미군 일부의 이라크 차출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모든 언론은 이 부분만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이날 통화는 미측이 북핵 해법을 내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을 보내겠다."(노 대통령), "함께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부시 대통령)

두 정상 간의 이 통화 후 양국 국가안보보좌관 간, NSC 실무진 간, 외교채널 간 교섭이 본격화한다. 새 해법 작성을 주도한 양국 NSC 실무진 간 워싱턴 협의에선 미국의 새로운 보상책 등 6개항을 담은 문건이 작성됐으나 백악관의 반응은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부시 대통령의 사인이 난 것은 3차 6자회담 본회담 하루 전인 22일 한.미 양자협의 때였다. 그 순간 우리 측 회담 대표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미측 안은 우리가 제시한 해법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정부 당국자는 "보상 내용은 우리가 제시한 것에서 더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미측이 제시한 내용은 획기적이다. 본지가 입수한 정부의 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측 안은 크게 두 단계에 걸쳐 일곱개의 상응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돼 있다.

초기 준비단계(3개월)엔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 폐기 약속,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 모든 시설과 물질에 대한 운용중단 및 봉인, 핵무기 및 부품의 사용 불능 등 네가지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대북 중유 공급, 잠정적 다자안전보장 제공, 북한 에너지 수요 및 비원자력 프로그램을 통한 수요 충족 방안 연구,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경제제재 해제 문제 협의 개시, 과학자.기술자 재교육 및 핵 폐기 과정에서의 기술적.재정적 지원 등 다섯가지 상응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이 핵 폐기를 종료하면 미국은 항구적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관계정상화 및 경제 협력 장애를 해소한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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