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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발등의 불로 닥친 그린카 개발, 생존의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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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먼 장래의 일로만 여겨져 왔던 친환경자동차, 즉 그린카 기술개발이 발등의 불로 닥쳤다. 엊그제 미 정부가 새로운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6년부터 자국 시장에서 팔리는 자동차의 평균 연비 기준을 현행 L당 10.5㎞에서 15㎞로 크게 올렸다.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려고 해도 2016년부터는 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같은 자동차 중에서도 승용차는 좀 더 기준이 세고 경트럭은 약하다. 승용차의 평균 연비 기준은 L당 16㎞다. 문제는 이걸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이 맞출 수 있느냐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연간 대미 자동차 수출이 90만 대나 되는 상황에서 만일 미국의 연비 규제를 못 맞춘다면, 그래서 수출을 못한다면 한국 자동차산업은 그날로 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게 그리 간단치 않다고 지적한다. 현대차 가운데 연비가 가장 좋은 게 12.5㎞ 수준이다. 7년 동안 연비를 L당 4㎞ 안팎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차체를 경량화하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하이브리드카 등 그린카 개발에 달려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시판 중인 하이브리드카의 연비는 L당 30~40㎞다. 우리가 이런 차량을 개발해 일반 가솔린차와 같이 미국에 수출한다면 평균 연비를 16.5㎞로 맞추는 데는 하등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경쟁국에 비해 많이 늦었다. 기술과 의지, 정책적 노력 등 모든 면에서 뒤처졌다. 오는 7월에야 겨우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카가 시판될 정도다. 그나마 연비가 L당 17㎞로 일본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국내에서 개발한 건 일본의 가솔린이나 독일의 디젤 방식이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 방식이다. 경쟁국들이 먼저 개발하면서 특허를 걸어놓은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은 LPG를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이므로 그 차를 미국에 수출한다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미국의 배기가스 규제를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아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과 정부, 기업이 또다시 혼연일체가 돼 세계 최고 수준의 그린카를 개발·양산해내야 한다. 이야말로 생존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