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글·사진=손민호 기자
오죽헌 주변에 자라고 있는 오죽(烏竹)
[2] 홍장암 바위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고려 말 강원도 안찰사 박신이 강릉기생 홍장과 정분이 났는데, 다른 지역을 순찰하고 돌아온 박신이 홍장을 찾았더니 강릉부사 조운흘이 놀려줄 생각으로 “홍장이 밤낮 그대를 생각하다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랑을 잃은 박신이 앓아 누우니 조운흘이 “경포대에 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오니 홍장도 내려올지 모른다”며 박신을 경포로 데려갔다. 그랬더니 물안개를 헤치고 홍장을 태운 배가 나타났다. 월하의 경포가 그만큼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는 뜻이겠다.
1. 선교장 입구에 있는 활래정 2. 애틋한 전설이 내려오는 홍장암 3 .선교
경포대가 있는 언덕에 신사임당 동상이 있다. 그가 태어난 오죽헌이 지척에 있는데 왜 여기에 동상이 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경포대와 신사임당을 좋아했다는 게 이유란다. 경포대 현판과 신사임당 동상 정면의 글씨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신사임당 동상 옆엔 한국전쟁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69년 세운 충혼탑이 있다. 자, 다시 보자. 경포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양반들이 기생 불러놓고 풍류를 즐기던 경포대가 있다. 그 왼쪽에 한국의 모성을 상징하는 신사임당 동상이 있고, 다시 그 왼쪽에 충혼탑이 있다. 참으로 기묘한 동거다.
경포대 아래에 강릉향교가 2004년 세운 시비가 있다.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人生遠慮 難成大業)’고 쓰여 있다. 언덕 위의 생뚱한 풍경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구절이다.
[4] 선교장 최초로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민간 주택이다. 조선 시대 왕이 아닌 신분으로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 한옥이다. 조선 시대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지었고,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가가 살고 있다. 옛날엔 이 앞까지 호수 물이 들어왔단다. 하여 집 앞에 다리를 놓았고, 이후로 저택 이름에 ‘배다리’, 즉 ‘선교(船橋)’가 붙었다.
눈여겨볼 건물이 몇 채 있다. 연못가에 놓인 활래정. 온돌까지 들여놓은, 당시로선 초호화 시설의 정자다. 사랑채로 쓰인 열화당. 출판사 ‘열화당’이 바로 이 집안이 운영하는 출판사다. 조선 시대 사대부 사이에서 금강산 유람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한양에서 금강산 가는 길목에 강릉이 있었고, 이곳에 들른 사대부들은 선교장 사랑채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하나 지금의 열화당은 어색한 모습이다. 건물 정면에 설치한 서양식 테라스 때문이다. 아관파천 직후 러시아가 위세를 떨치던 때 러시아 공사가 열화당에 머문 적이 있었다. 테라스는 그 답례였다. 철거하려다 이것도 역사라 판단해 남겨두고 있다. 입장료 어른 3000원. 한옥체험도 가능하다. 033-646-3270.
경포대 공원에 있는 신사임당 동상(左), 경포대에서 바라본 경포 호수의 모습. 선조의 풍류가 느껴진다(右).
최근 오죽헌 방문자 수가 크게 늘었다. 모자가 ‘지폐 모델’이 된 덕분이다. 그래서 강릉시는 신사임당 동상을 오죽헌 안에 또 세웠다. 한 도시 안에 한 인물의 동상이 두 개 있고, 두 동상의 얼굴이 너무 다른 건 놀라웠다. 5000원권 지폐에 그려진 율곡의 초상화는 오죽헌 안 문성사에 있는 표준 영정이 아니다. 표준 영정이 정해진 연도보다 율곡 초상이 5000원에 그려진 연도가 더 일러서다. 오죽헌 안에 강릉시립박물관이 있다. 입장료 어른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