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조병수의 '성북동 210번지 스튜디오 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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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불량끼' 란 게 뭘까. 정상이 아닌 나쁜 증세. 세월을 읽는 '낡음' 은 또한 - .낡아서 불량하게 보이는 것은 무턱대고 밀린다.

우리에게서 과거는 죄다 그런 부류다.

도시계획 과정의 '재개발' 도 비슷하다.

건축가 조병수 (41. 조병수건축연구소 소장) 씨. 그의 작업은 '달동네' 에서 출발한다.

91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직후인 어느날, 서울의 정릉에서 그는 '우리네 동네' 또는 '사람사는 모습' 을 보았다.

그의 묘사. "이끌고 가는, 그러나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않는…. " "계단.전봇대, 그리고 갇힌 하늘이 만들어 내는 역동적 공간. " "넓은 길에 쏟아진 많은 빛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반대로 좁은 골목길에는 항상 빛이 있다.

빛과 그림자는 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저녁이면 안에서 바깥으로 스며 나오는 밥짓는 소리와 냄새들. " '현대의 지역성 (또는 토속건축.contemporary vernacular)' 이란 용어를 떠올렸다.

말이 되는 건지 따져볼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93년 겨울날 '정릉과 창신동' 이란 타이틀의 자연발생 주거지역 워크숍에 쏟아진 갈채는 그를 가벼운 흥분으로 몰았다.

신당동 3개의 다가구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주민들의 열정하며…. 이후 그는 '성북동 길 살리기' 를 통해 '존재했던 것/존재하는 것' 의 연결고리 찾기에 집착했다.

성북동 치안골목 (45년 치안본부 직원들의 사택이 들어서면서 붙여진 이름) 과 옛 서울성벽 사이 위치한 한 허름한 건물.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족의 주거를 겸한 자신의 연구소 공간확보를 서둘렀다.

우선 집을 반으로 나눴다.

벽체 등의 기본골격은 그대로 두고 오랜 세월에 걸쳐 덧붙여졌던 천정.벽지.장판 뜯어낼 때 - .그의 말. "시간의 자국을 간직하고 있는 땅과 구조물들을 자르고 겉의 마감재료를 걷어냈을 때 드러나는 거친 속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이렇게 '성북동 210번지 스튜디오 주택' 은 완성됐다.

잠시 시선이 몰리는가 했더니 '월간 건축인 포아' 가 화살을 날렸다.

제1회 '크리악' 상 (賞) 수상!

선정사유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과거의 흔적과 현재가 중첩되도록 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의 가치를 건축적으로 되찾아 내고 있음. 건축의 리사이클링 과정에서 보여주는 '관심.매만짐' , 그리고 낮게 처리된 녹슨 철판담장과 나무계단에서 느껴지는 정겨움.포근함 등의 열린 공간의 의미. " 그의 건축에는 날것의 철.목재가 자주 등장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깔이 변해가는 것에 편안한 여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경험과 인식' 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건축은 시각적 오브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다.

대신 그는 정서적으로 어떻게 다가서는가를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마스터, 즉 모든 사람이 따르는 대상으로서의 장인작업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는 끝났다.

문화적으로 말하면 다양성의 시대…. "

그의 작업스타일은 좀 즉흥적이다.

하지만 특유의 에너지도 '닥치는 대로의 대응방식' 에서 나온다.

수상소식에 즈음해서 엄습한 두려움 또한 유명세가 몰아오는 반작용에 대한 경계심의 표현 아닐까. 그래서 용인.분당.울산 등지로 이어지고 있는 후속 프로젝트는 여전히 관심거리다.

그는 93년 워크숍에 참가했던 김호정 (현재 미 MIT 유학중) 씨가 남긴 시를 읽으며 되살아 오르는 충동을 삭이기 일쑤다.

그리움 같은 것이다.

" (…) 사람들의 온기가/가지처럼 뻗은 길로 모여/혹은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오고/혹은 아래에서 하늘로 올라간다//사람들은 물로 마당을 청소하고 집안일을 해서/그 물이 하루종일 골목을 적신다//담은 열려 있어/누구나의 삶이 얼마쯤은 보인다//골목은 끝없이 이어져 (…) 나는 어딘가의 가운데 서 있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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