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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대한변호사협회 윤리위원장 최종백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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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법조계가 비리의혹으로 시끄럽다.

의정부지원.지청 사건으로 변호사와 판.검사간의 유착의혹이 불거져 검찰이 수사를 진행중이다.

대한변협은 이와는 별도로 사건수임 비리혐의가 드러난 변호사 16명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한 상태다.

법조 3륜 (輪) 이 비리혐의로 한꺼번에 수사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사법사상 전례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이들을 선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국민은 충격 속에 법조계도 개혁의 대상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변호사 자정운동의 주역인 대한변협 윤리위원장 최종백 (崔鍾伯.58) 변호사. "법조인들이 손가락질을 받은 상황에서 같은 법조인으로서 할 말이 별로 없다" 며 인터뷰를 사양해온 그를 서울서초동 사무실로 찾아가 만났다.

- 변협의 자정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큽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사상 처음으로 동료 변호사들에 대한 검찰수사까지 결심한 만큼 모든 비리의혹을 밝히겠다는 30명 윤리위원들의 결심이 대단합니다.

지난주까지 4차회의를 거쳐 조사대상 85명의 변호사중 모두 16명을 수사요청했고, 23명의 변호사를 징계위에 회부했습니다.

조사대상 변호사는 일반변호사의 평균 수임건수를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월평균 10건 이상의 형사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예상했던 바지만 '협회장을 고소하겠다' 고 나오는 변호사들이 있는 등 해당자들의 반발이 매우 심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옥석 (玉石) 을 가리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생각입니다.

자정 작업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협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변호사업계의 비리가 왜 없어지지 않는지요.

"영장실질심사제 실시 이후 구속사건이 격감하면서 사건유치 경쟁이 심화됐습니다.

변칙적인 플레이가 동원됐고 직업적 브로커를 스카우트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연출됐죠. 부장검사 출신 모 변호사는 거액의 돈을 주고 브로커 출신의 사무장을 끌어오기까지 했습니다.

점점 변호사 수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점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 그렇다면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의 예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만명의 변호사가 활동해 '변호사의 천국' 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는 매년 3백여명의 변호사가 징계위에 회부돼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이 때문에 징계대상 변호사를 변론해주는 변호사가 최고의 수입을 올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대상이 됐던 변호사는 결국 자격을 박탈당하든가 아니면 거액의 변호사 수임료 때문에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맙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변호사들이 더욱 조심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결국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감시와 처벌외에 다른 방안도 있습니까.

"제도개선을 추진중입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의 광고를 무조건 규제하고 있는 변호사법은 소비자가 상품 (변호사)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뢰인들이 자기 사건을 처리하는 데 적합한 능력이나 경험을 가진 변호사를 고를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는거죠. 이것이 브로커가 활개치는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변협 차원에서 전문변호사들을 복수추천해 소비자와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중입니다."

- 의정부지역에서 판.검사들이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받고 금품거래까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충격적인 얘기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판사가 변호사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에서 직무와의 연관성이 있는데도 어떻게 돈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 법조인들이 뭐라고 변명하든 사회적 지탄 여론을 받아 마땅합니다."

- 이에 대한 검찰수사의 필요성에도 동의하십니까.

"대법원이 판사 전원을 인사조치하는 등 최대한 노력을 기울인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법관이라도 범법행위를 했다면 수사.처벌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냥 사임하는 형태로 면책시키거나 일반인보다 너그럽게 처리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을 높이는 것입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법조인간의 금전적 유착이 부각돼 있는데 변호사와 판.검사가 지켜야할 선은 어디까지라고 보시는지요.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5백명 이상으로 늘면서 예전의 순수한 동질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돈' 이 오간다면 그것은 변질되고 변칙적인 인간관계일 뿐이죠. 이번에 문제된 의정부 지역만 해도 대부분 지방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사교' 를 기화로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은 거지요. 그러나 판사와 변호사가 만나선 안된다는 식의 획일적 기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법조인들은 직업여건상 폭넓게 사람을 사귀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사건과 관계가 없는 범위내에서 판.검사가 친한 변호사들과 어울리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직업.윤리의식만 유지할 수 있다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

- 과거에는 판.검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청렴성을 지킬 수 있었지만 요즈음은 개업해도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현직 판.검사들의 비리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내성적 성격에 말주변 없는 저도 변호사 개업한 뒤 판사시절 월 60만원 수입이 1천만원으로 뛰었습니다.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하고 개업하면 저절로 의뢰인들이 믿고 찾아와 경제적 여유도 생깁니다 (직접적인 표현은 피했지만 그의 말은 "현직 판.검사로 있을 때 너무 돈을 탐하지 말라" 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아직도 잘 아는 후배 단독판사나 고법 배석판사들이 개업 상담을 하러오면 "판사 일이나 열심히 하라" 며 호되게 내친다고 한다) . 법조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에 비례해 '존경 못 받을 바에야 돈이나 벌자' 는 풍조가 법조계에 일부 퍼진데 대해 판사생활을 했던 법조인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 검찰권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비자금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번 사건이 정치적 문제로 매듭지어진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동안 우리 검찰은 상당부분을 정치논리로 풀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그런 행태가 반복된 것이죠. 그리고 정치권력이 모든 분야를 장악하는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집권세력은 과거 야당시절 주장해온대로 '특검제' 를 스스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요즈음 법조계의 전관예우 (前官禮遇)가 비난을 받고 있는데 부장판사로 재직하다 개업한 뒤 그 혜택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84년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마치고 개업한지 3개월이나 됐을 땐가요.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나 무죄가 나오게 해 달라는 내용의 폭행사건을 하나 맡게 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징역 10월을 선고했죠. 나중에 알았지만 재판부가 개업한지 얼마 안된 저의 체면을 봐서 단 2개월을 깎아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원심을 파기했던 겁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죠. 그때부터 10년 넘게 형사사건은 단 한건도 맡지 않았습니다.

- 돌아가신 아버지의 청렴성이 법조계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원망을 한 적은 없었습니까.

"아버님이 검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집에 돈이 없어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 (85) 와 함께 봉투 붙이는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중학교 다닐 때에는 수업료를 못내 세번이나 학교에서 쫓겨난 적도 있지요. 법무관을 마치고 검사를 지망하려 했을 때는 아버님이 '내 후광을 믿고 검사를 지망하려느냐. 판사가 돼 법의 정도 (正道)가 무엇인지를 배우도록 하라' 고 말하셔서 진로를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만난 사람=이상언 사회부차장, 정리 = 이상복 기자, 사진 =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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