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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남 3인방’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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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되살아난 남한 통일부 대 쑥대밭 된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남한에 보수 정권이 등장하며 폐지 위기에 몰렸던 통일부는 생존해 여유를 되찾고 있는 반면 남한을 상대했던 통전부를 비롯한 북한의 주요 인사들은 대거 몰락해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1년 반 남북 주무 부서의 성적표다. 정권은 남에서 교체됐는데 더 크게 요동친 쪽은 북이라는 게 지금의 결과다.


‘퍼주기 정책’의 주역으로 몰렸다가 지난해 3월 대통령 업무보고 때 당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반성문’을 읽으며 출발했던 통일부에선 요즘 ‘포용 정책’이 공식 거론될 정도로 자신감이 엿보인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과거 정부의 포용 정책을 큰 틀에서 계승한 것”이라고 공언한 뒤 자신이 구상한 ‘비핵·개방·3000 구상’도 ‘원칙 있는 포용 정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 장관은 18일엔 “대북 정책에 상당한 오해가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단절되지 않는 한 불가피하게 과거 정부의 유산이 승계된다”며 대북 유화 제스처도 보여 줬다. 1년여 전 ‘포용 정책=햇볕 정책’ 등식 속에 ‘포용’이란 단어를 꺼내지도 못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북한에선 대남 정책의 실세 중 실세였던 최승철 전 통전부 부부장, 남북 회담의 얼굴이던 권호웅 전 내각 책임참사, 남북 경협의 실무 책임자였던 정운업 전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 회장 등 정책·회담·경협의 ‘대남 3인방’이 몰락했다. 대신 군부가 대남 주도권을 행사하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19일엔 일부 언론에 ‘최승철 처형설’까지 보도되기도 했다. 국정원을 비롯한 정부 당국은 “금시초문”이라고 가능성을 작게 봤지만 일각에선 “처형설 자체가 북한의 기존 대남 라인의 전면적 변화를 방증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 10·4 선언의 막후 주역인 최승철 전 부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보할 수 있는 최측근이었다. 2007년 방북한 여권의 한 유력 정치인에게 그는 “청와대에 먼저 들르셨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당시 방북단 인사는 “김 위원장에게 보고할 내용이 있는지부터 확인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를 접한 정치권 인사는 모두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폭탄주를 들이켜며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대북 소식통은 “2007년 말 당 조직지도부가 통전부 전반을 대대적으로 검열하기 시작했다”며 “이 과정에서 최 전 부부장의 직권 남용, 금품 수수가 적발돼 황해도 닭 공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남북 장관급회담의 북측 대표이던 권 전 내각 책임참사도 가택 연금 상태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권 전 참사는 2000년 3월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베이징(北京)에서 비밀리에 만났던 북측 인사 중 한 명이다. 그해 8월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을 만나며 개성공단 조성의 기반을 닦았던 정운업 전 민경협 회장 역시 자택에서 수백만 달러가 발견돼 경질됐다고 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들을 대신해 대남 강경 비판에 나선 것이 인민군 총참모부와 김영철 국방위원회 정책실 국장(중장) 등의 군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의 몰락을 개인 비리 차원으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대남 의존도 심화, 남한발 문화 유입 등 지난 10년 대남 정책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물리는 과정에서 이들이 주 과녁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병건·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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