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기사는 물론 사진 내용도 읽어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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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아날로그 시대보다 디지털 시대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격차가 더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한국에는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자’들이 6만 명이 넘습니다. 흐릿하게라도 볼 수 있는 분들까지 합치면 30만 명 정도 되지요.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달 초 시각장애인 전용 인터넷 프로그램 ‘종달컴’을 내놓은 김덕상(59·사진) 한국시각장애인선교회장의 말이다. 김 회장은 19일 ‘발명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KT사옥에서 ‘종달컴’ 발표회를 열었다.

그는 ‘종달컴’을 시각장애인 학교에 무료로 보급할 계획이다. 기존의 시각장애인용 스크린리더기(화면낭독기)는 텍스트를 단순히 위-아래, 좌-우로만 읽어주는 것이어서 광고와 세부 제목까지 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를 개선한 것이다. ‘종달컴’은 생선에서 살만 발라주듯 중요한 정보를 골라주는 ‘사용자 중심’ 프로그램이다. 뉴스의 경우 머리기사부터 먼저 읽을 수도 있고, 원하는 기사만 골라 읽을 수도 있다. 사진도 읽어준다. 예를 들면 김연아가 웃고 있는 사진에서 ‘김연아가 웃고 있다’ 등 음성낭독기가 사진의 대략적인 정보를 들려주는 식이다.

“중요한 정보만 골라 낭독해주는 방식은 국내외에서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다문화 가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업들과도 협의해 사용처를 다양하게 구상할 겁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디지털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실무 역할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전화로 책을 읽어주는 ‘종달새 전화도서관’의 신인식 관장과 김정 부장이 맡았다. 시각장애인인 이들은 김 회장과 함께 한국시각장애인선교회에서 일하고 있다. KT도 음성전환소프트웨어인 ‘휴보이스(HUVOIS)’를 기증해 개발을 도왔다.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30여 년간 일해온 김 회장은 올해 4월부터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다. 평소 신앙인으로 봉사 활동에 열심인 김회장은 시각장애인골프단장으로 활동하며 시각장애인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골프단 회원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연락을 주고 받을 순 없을까 하는 구상도 해봤습니다. 장애인들도 IT와 친근하게 지낼 방법 말입니다. 퇴직 뒤 경영 경험을 살려 일선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죠. 좋아서 눈물을 흘리는 분도 계시고 감사의 전화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일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고 있다.

“시각장애인 부부에게 어느 날 어린 딸이 모르는 걸 물어봤대요. 부부가 시각장애인용 스크린리더기를 이용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려고 했는데 찾고 싶은 걸 결국 못 찾았다는 거에요. 딸이 ‘왜 그것도 몰라’하며 속상해 하는데, 마음이 아팠다고 해요. 비장애인이었다면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에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글·사진=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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