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개인전]보이는 것과 안보이는 것 사이에 '경계'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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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2월말 서울 조흥은행갤러리에서의 일이다.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 열에 아홉은 입속으로 "잘못 들어왔나" 하고 중얼거리며 되돌아가고 있었다.

깨끗한 마루바닥에 흰벽 그리고 조명뿐. 전시장에는 어느 구석에도 그들이 생각하는 '미술' 은 없었기 때문이다.

속았다고 화를 냈건 어쨌건 "그래도 무엇이 있겠지" 하고 샅샅이 뒤져본 10% 남짓한 사람들은 끝내 조각가 김용철씨의 작품을 봤다.

사람 어깨 높이로 흰벽 군데군데 꼽아놓은 20㎝ 길이의 얇은 대나무살이다.

자세히 보면 대나무살 중간에 하늘하늘 움직이다가 사람 입김에 밀려 살며시 밑으로 떨어져버리는 투명 나일론실로 만든 큐빅이 걸쳐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을 왜 만드느냐" 의 물음에 그는 "재미있다" 고만 했다.

더 캐물어가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까지 가보고 싶었다" 고 했다.

그가 이번에는 원서갤러리 초대를 받아 3일부터 12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02 - 762 - 2705. 끓는 물이 어느 순간부터 물이 아닌 기체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모두가 본래 모습을 버리는 순간인, 임계 (臨界) 상태를 말해주는 것같은 작업이다.

전지 크기의 흰 종이에 바늘을 눌러 조그맣게 큐빅을 그려넣어 1m만 떨어져 보면 그저 흰 종이로만 보이는 작업과 반대로 검은 종이에 사프펜으로 큐빅을 그린 것. 그리고 길이 2m40㎝, 직경 15㎝ 되는 통나무를 붙잡고 머리카락 굵기로 깎은 작업. 투명 나일론실 대신 눈썹굵기의 대나무 가시로 만든 큐빅도 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이 된 통나무는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깎아 꼬박 네달이 걸렸다고 했다.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결과는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는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되는 비효율과 비능률에 그가 몸을 내던져 도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하고 화려한 것이 눈길을 빼앗고 주장.개성이 강할수록 현대적이라는 믿음이 어쩌면 허망함을 재촉하는 함정이라는 것을 그는 하릴없는 싱거운 작업으로 일깨워주는 듯하다.

김씨는 홍익대 조각과를 마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 골드스미스칼리지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상명대 강사.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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