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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스팸문자 알고 보니 은행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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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07년 11월, A은행의 대출상담사 이모(32)씨는 사무실 공용컴퓨터로 작업을 하던 중 고객들의 이름·직업·대출현황 등 신용 정보 수천 건이 문서로 저장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씨는 이 문서를 다운로드한 뒤 직업·근무처·대출금 상환일 등을 기준으로 고객을 분류했다. 그는 자료를 다른 업체에서 근무하는 대출상담사들에게 건넸다. 정보를 주는 대신 대출 계약이 성사되면 실적 수당의 절반을 받기로 약속했다. 이씨는 “‘내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항의하는 고객은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 영업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일러두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이 제기될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다. 또 ‘현재 (고객의)부채현황을 조회한 뒤 참고할 것’ 등 정보활용 노하우까지 공유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17일 고객의 신용정보를 유출한 혐의(신용정보법 위반)로 이씨 등 4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이 소속된 은행과 저축은행·캐피탈 등 10곳의 법인도 같은 혐의로 입건됐다. 제1금융권의 신용정보가 불법 거래돼 적발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 적발된 대출상담사들은 제1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려운 고객의 신용정보를 제2금융권 대출상담사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보 장사’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사이에 오간 누적 정보량은 총 400만여 건에 이른다”며 “피해 고객 수는 줄잡아 수십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거래된 신용정보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을 발송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회사원 김모(27·여)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캐피탈입니다. 고객님은 지금 즉시 1000만원 대출 가능합니다’와 같은 스팸 문자메시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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