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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는 위기의 주부 ?' 백악관서 연출한 조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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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크로퍼드 목장에서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남편은 '전기톱으로 잘라버려'라고 하죠. 아마도 남편의 이런 점 때문에 체니 부통령이나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죽이 잘 맞는 것 같아요." 텍사스주에 있는 크로퍼드 목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는 곳이다.

"한 번은 (체니 부통령의 부인인) 린 체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같이 남자 스트립바에 간 적이 있었죠. 그때부터 린의 비밀경호 암호가 (스트립 댄서에게 팁으로 꽂아주는) '달러 지폐(dollar bill)'가 됐답니다."

지난달 30일 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에서 로라 부시(사진) 여사가 이같이 '폭탄 발언'을 한 직후 좌중에서 폭소와 박수가 터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유머 작가 랜던 파빈(56)이었다. 대통령이 연설하면서 적절히 사용하도록 유머를 만들어 주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이날 부시 여사의 발언은 파빈의 사전 각본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2일 보도했다.

현모양처형 이미지가 강한 부시 여사를 연단에 세우자는 제안은 부시 대통령이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아내가 무대에서 무슨 말을 할지 전혀 몰랐다. "남편은 오후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든다. 나야말로 위기의 주부"라는 부시 여사의 말에 부시 대통령은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부시 여사는 정작 자신이 인용한 ABC 방송의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위기의 주부들'의 열렬한 시청자인 쌍둥이 딸 제나와 바버라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부시 여사는 만찬 직전까지 여러 차례 리허설을 되풀이했다. 부시 대통령은 만찬 뒤 "로라는 정말 잘했다. 정말 웃겼다"고 칭찬했다.

파빈은 "대통령을 위한 유머를 쓰는 게 일반인을 위한 것보다 훨씬 쉽다"고 말했다. 파빈은 홍보회사에서 일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가가 되면서 백악관과 인연을 맺었다.

공화당.민주당의 여러 정치인을 위해 원고도 써준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의 유머 원고를 쓰면서 대통령은 흔히 근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하면 웃지 않을 농담도 대통령이 하면 웃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스스로 낮춰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대통령의 개성과 시의적절한 화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대한 연설문을 쓰는 게 유머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훨씬 쉽다"며 유머 창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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