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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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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흔히 미국은 로비의 전쟁터라고 한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일대에서 활동하는 로비스트는 미등록자를 포함해 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1개 사단이 미국을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때문에 로비를 입법.사법.행정부와 언론(제4부)에 이어 '제5부'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로비단체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 '미국은퇴자협회(AARP)'다. 50세 이상 미국인이 가입 대상인 AARP는 3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리며 사회복지.의료보험 등 노인과 관련된 사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관심이 있는 미국인 5만5000여명이 회원인 '미국.이스라엘 홍보위원회(AIPAC)'도 항상 영향력 5위 안에 들어가는 로비단체다. '뿌리부터 로비하라'는 모토를 내건 AIPAC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는 정부 관리, 의원 및 보좌관 등을 수시로 이스라엘에 초청해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놓는다고 한다. 정치자금 동원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대만이 이스라엘에 필적하는 로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로비는 1976년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또는 '박동선사건'으로 얼룩졌다. 워싱턴 포스트의 폭로로 불거진 코리아게이트는 한.미 관계까지 어색하게 만들었다.

미국 기업들도 로비자금을 많이 쓴다. 포춘지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등 500대 첨단기술 회사가 로비에 쓴 돈이 3890만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기술개발에만 전념했던 첨단기술 회사들도 영업이나 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 때문에 의회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로비법을 만들어 로비를 양성화하겠다고 나섰다. 등록된 로비스트만이 일정 범위의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내용으로, 미국 로비법이 모델이라는 소식이다. 기업이나 이익집단이 정상적인 로비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 음성적인 로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인사청탁과 전국구 로비 파문에 시달리던 시점에 로비법을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이 묘하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