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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사원 “보고 듣는 게 다 공부” 벤처 사장 “맞춤 인재로 크게 커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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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24면

정부가 청년 실업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인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취업 보장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인턴을 마치면 그 다음 일자리를 또 걱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중도 탈락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3개 정부 출연 연구소를 관리하는 기초기술연구회(이사장 민동필)가 새 인턴제를 도입해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산·연(産硏) 연계 인턴제’다. 기업이 채용을 약속한 이공계 인력의 인턴 교육을 연구소가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산·연 연계 인턴을 도입한 연구소들을 둘러봤다.

‘산·연 연계 인턴’ 현장을 가다 <상>한국항공우주연구원

#대전시 어은동 대덕연구단지 안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안테나 타워동. 인턴 연구원 김동준(28)씨는 3월 중순부터 이 건물 2층 지상체계개발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항우연 안상일 지상체계개발팀장 등 5명의 연구원이 그의 스승이다.

2000년 한양대 전자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한 김씨는 인공위성이나 항공기 같은 첨단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연구개발(R&D) 분야의 일자리를 찾던 그는 올해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항우연 산·연 인턴에 합격했다. 항우연은 김씨를 인공위성 관제와 위성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분야 벤처기업 ㈜솔탑과 연결해 줬다. 김씨는 산·연 연계 프로그램에 따라 인턴 교육을 마친 뒤 솔탑이 원하는 인재로 인정되면 정식 채용된다.

김씨 사무실 근처의 위성 운영동에는 지름 13m의 거대한 위성 안테나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거대한 안테나를 가까이서 보니 느낌이 새롭더군요. 학교에서 기초지식은 배웠지만 그걸 실제로 응용해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좋아요. 인공위성과 송수신하는 지상체계시스템이나 안테나 같은 게 다 그런 거죠. 그동안 머리로만, 수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식을 실제로 적용한 물체를 보니 더 가슴에 와 닿아요. 이해도 더 쉽게 되고요.”

인턴 연구원의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김씨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인공위성 분야 전문 서적이나 논문을 뒤적이다 오후 8시쯤 퇴근한다. 근무 시간에는 안상일 팀장이나 멘토 역할을 하는 연구원이 맡기는 일을 처리한다. 인공위성을 제어하는 지상체계를 개발하는 팀에서 일하기 때문에 관련 데이터를 찾는 보조 업무를 하기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 가끔 일이 없을 때는 위성 분야의 전공 서적을 펴 본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다. 김씨는 “일하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인공위성 분야를 배울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석사인 김씨의 인턴 월급은 150만원, 실수령액은 140만원 정도다. 고향이 서울인 김씨는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곤 처음으로 객지 생활을 하고 있다. 월 20만원에 연구원 근처 대학가에 원룸을 얻었다. 그는 “처음 혼자 살아 보니까 퇴근 후에도 청소·빨래 등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인턴 연구원에 합격해 대전으로 내려간다고 하니 서울에 있는 여자친구가 처음에는 별로 반기지 않더군요. 하지만 자긍심을 느낄 만한 항우연 분위기를 전해 주니까 요즘엔 ‘잘 선택했다’고 격려를 해 줘요.”

인공위성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김씨는 “나의 미래”라고 했다. 그는 “단 한 번의 노력으로 자신의 바람을 성취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솔탑의 연구개발팀에서 첫째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공영보(41) ㈜솔탑 사장은 항우연에서 인턴 김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사공 사장은 “우리 회사나 김군이나 모두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연 인턴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괜찮은 직원 채용하기가 쉽지 않아요. 벤처기업이다 보니 신입사원을 일일이 교육할 만한 여력도 많지 않아요. 이런 프로그램이 더 확대됐으면 합니다.”

산·연 인턴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제안도 했다. 인턴이 교육을 마치고 기업에 더 빨리 적응하게 하려면 인턴 기간 중에 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익히도록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인턴 기간 후반부쯤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해당 기업으로 출근해 일터 분위기를 익히고 회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공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1995년 대덕연구단지로 와서 창업했다. 비슷한 업무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고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었단다. 첫해엔 연구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이듬해 위성 및 지상시스템 연구개발에 발을 들여놓았다. 험난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벤처 거품에 한껏 취해 있던 2000~2001년이 그에겐 가장 힘든 시기였다. 지금은 동시다발적으로 위성을 여럿 개발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위성 개발 후 다음 위성사업이 시작될 때까지의 ‘춘궁기’엔 먹고살기가 쉽지 않았다. 벤처 거품이 불자 차라리 돈 되는 인터넷이나 게임 쪽으로 사업을 바꾸자는 직원도 있었다.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집 판 돈으로 견뎌야 했죠. 인터넷 쇼핑이 유행하니까 직원들이 그쪽으로 가자고도 하더군요. ‘우리가 쇼핑에 대해 뭐를 아느냐, 우린 장사꾼이 아니지 않으냐’고 설득했어요. 그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어요. 당장 돈 된다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연구개발을 하는 엔지니어가 갈 길이 아니라고 믿었어요. 그때 남은 직원들이 지금 우리 회사의 주역입니다.” 김씨처럼 위성 분야에 몰두할 각오가 서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솔탑은 2002년 이후 한반도 상공의 위성전파를 측정하고 감시하는 위성전파감시시스템를 비롯해 위성주파수계획시스템,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 2호의 위성종합시험장치 및 위성관제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다. 1m급 고해상도 카메라를 탑재한 아리랑 2호가 보내는 영상을 상업화하기 위한 수신처리시스템도 해외 곳곳에 설치했다. 그는 “까다로운 외국 영상 판매사들의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수용한 덕분에 상용 시스템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성으로 좋은 영상을 얻더라도 이를 소프트웨어로 제대로 가공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 한다. 솔탑의 소프트웨어 기술 덕분에 아리랑 2호가 보내는 영상의 상품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아랍에미리트에 아리랑 2호용 관심 영역 영상처리시스템을 판매했다. 외국 기상위성의 위성 영상 데이터를 개인 PC로 수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국내 시장에 내놨다. 이제까지 해외 기술에 의존해 온 기상영상수신처리시스템을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해 낸 것이다.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의 벤처단지에 있는 솔탑 사무실은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사공 사장은 굳이 직원 20명의 출근 시간을 챙기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20억원 매출에 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며 “내년엔 기존 투자를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올해 11월 말 발사할 예정인 통신해양기상위성 때문이다. 솔탑은 이 위성의 관제시스템과 기상영상데이터 수신처리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이미 개발한 기상영상수신처리시스템을 PC 기반 소형 기상위성 수신기로 개발해 지방자치단체·학교·연구기관·선박 등에 저가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솔탑의 시장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항우연 안상일 지상체계개발팀장은 그와 오랫동안 작업해 온 솔탑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다른 회사와 눈높이부터 다른, 장인(匠人)이나 달인을 떠올리게 하는 회사”라고 극찬했다. 올해 처음 참여하게 된 인턴제에 대해 “솔직히 부담되는 측면이 있지만 현장교육(OJT)을 잘 시키면 우리 일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시 출퇴근하는 인턴 생활을 편하게(?) 하다 일 많으면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벤처기업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김씨는 “이미 대학원 시절 하루 24시간 연구하는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며 “연구라고 하는 게 마감 시간 맞춰 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당차게 말했다.

사공 사장은 “소프트웨어 전공자 중 위성 분야에 열정을 갖고 뛰어들 사람은 신입·경력을 가리지 않고 채용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막연하게 우주나 위성이 멋있다고 쉽게 덤볐다가 공부할 게 워낙 많아 고생하는 이가 없지 않다는 경고성 조언도 했다. “남이 잘 닦아 놓은 길을 가는 게 가장 편하고 빠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벤처에서 뜻있는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은 누군가 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그런 이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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