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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녹색정책, 전시행정으론 성공 못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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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러나 녹색성장은 좀 더 치밀하고 진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 빈번하게 나타났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서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면 각 부처는 그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낸다. 그러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하룻밤 사이에 나오기는 힘든데다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무능력자 또는 반개혁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이러다 보니 포장은 요란하나 내용을 뜯어 보면 과거 정책의 재탕 삼탕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한 예로 노무현 정부가 ‘정부혁신’을 최고의 정책순위로 선정하자 각 부처는 ‘혁신담당관실’을 만들어 이를 독려했다. 공무원들은 용어도 어려운 ‘로드맵’ 작성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요란했던 조직들과 로드맵들이 새 정부가 들어서자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지 않았나.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 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정책은 지구온난화 시대의 글로벌 과제이므로 많은 관심과 절실한 지원이 요구된다고 본다. 또한 전 세계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녹색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외치자마자 이해하기도 어려운 정책과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문제다. 특히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내에 ‘녹색’자가 붙은 조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과거 경험에 비추어 우려된다. 이제 이름만 붙이면 모두 녹색성장정책으로 둔갑하는 그런 형식적이고 전시행정적인 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또 그린정책은 투자에 비해 반대급부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기존 정책을 녹색으로 분칠해 추진한다면 국민들로부터 호응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초의 정책이 지향했던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핵심적 정책을 몇 개 엄선해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폐기물관리법 등 기존의 환경 관련 법령이나 제도 등에 들어 있는 획일적인 규제도 폐지돼야 한다. 녹색산업화에 기여하고 있는 폐기물처리 업체와 자원재활용 업체들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에 재활용산업육성자금을 1000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규제에 발 묶여 허덕이는 이들 업체에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아울러 환경단체가 제기하고 있는 그린벨트 대규모 해제를 통한 아파트 공급 등의 엇박자 정책들도 거두어 들여야 한다.

녹색성장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여공무원들의 이해와 적극적인 시행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이 앞에서 외치고 독려하지만, 막상 일선에서는 이러한 정책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 해 예전같이 규제 위주로 행정단속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피해는 결국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따른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편호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전 감사원 감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