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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논객 시바 료타로 우리땅 답사 두권의 여행기 선보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본의 작가이자 논객인 시바 료타로 (司馬遠太郎 1923~1996) 는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과 기행문.수필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한일문제에 대해서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런 그가 한국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수필 '한나라 기행'과 '탐라기행' 이 나란히 번역 출간돼 눈길을 끈다 (학고재刊) .이 두 책은 단순한 기행문은 아니다.

한국기행 하면 흔히 떠오르는 고려청자나 석굴암 등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가야.백제.신라의 땅에서 한.일의 교류 흔적을 찾고 거기서 역사와 인간의 관계를 논하고 있는 독특한 책이다.

우선 그는 한국의 역사.언어.풍습 등에 대해 폭넓은 지식과 식견을 보여준다.

예로 부산 용두산 공원이 조선시대 일본 쓰시마번의 왜관 (교역소) 터였으며 공원 한복판의 이순신장군 동상이 있는 자리는 쓰시마번의 수호신상인 곤비라고 (金比羅宮) 를 세워뒀던 곳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한국인에게도 새롭다.

또 일제시대 제주도 해녀들이 일본 바다까지 나가 대졸자 일년치 월급을 몇 달 만에 벌어오곤 했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부산의 왜성터를 찾는가하면 임란 때 조선에 귀화해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받았던 무사 사야가의 후손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런 현장 속에서 그는 고대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가야.신라.백제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초지일관으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사람끼리의 관계와 문화교류" 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두 나라는 서로 문화를 주고 받았지 일방적으로 한쪽이 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한국인.일본인.몽골인이 같은 문화 속에서 산 동족이라는 주장도 편다.

심지어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도 "실제로 존재했으나 여기에 식민경영이라는 서양용어를 붙이는 것은 가당치 않고 다만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살던 혼거지역 정도로 봐야할 것" 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하지만 똑같은 주장이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침략의 정당화 도구로 악용됐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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