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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두드리듯 금리 동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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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스 분석  변곡점.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곳이란 뜻이다. 세계적으로 주가가 회복세를 보이고 일부 경기 지표가 호전되면서 경기 흐름이 변곡점에 가까웠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기가 바닥에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주가가 오르고 서울 강남의 재건축아파트 가격이 들썩거리자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는 ‘과잉 유동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러나 12일 기준 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판단은 “경기 하강 속도가 완만해졌지만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우리 경제가 전보다 나빠진 것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현저하게 개선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내년에도 성장의 힘이 강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는 2010년의 경제 규모가 2008년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2년 동안 경제가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마당에 변곡점을 말하긴 이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중에 돈을 푸는 금융 완화 기조는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경제팀 수장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신중하다. 그는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해외에선 최근의 흐름을 좀 더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11일(현지시간) 선진 10개국(G10) 중앙은행 총재 회담을 마친 뒤 “아직 안심할 시기는 아니지만 세계 경제 사이클이 변곡점 근처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회복돼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각국 중앙은행이 풀린 돈을 환수할 수 있는 중장기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에서도 미세한 변곡점이 감지된다. 단기 자금의 움직임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고 한 것이다. 시중에 풀린 돈이 과잉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단기 자금이 자산 버블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대목이다. 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지금은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고 올리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금리 조절보다는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이나 통화안정증권 발행을 통해 유동성을 조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이날 금리 동결로 한은의 기준 금리 인하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쪽이 우세하다(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경제조사실장).

하지만 정책 당국자의 입에서 변곡점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경기가 회복된다는 뚜렷한 근거가 필요하다. 변곡점을 확인하면 통화 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출구 전략’에 대해선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총재는 “금리 결정은 국가적 문제인 만큼 여론과 분위기가 중요하다”며 “적절한 때에 (금리 인상이) 원만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이후의 수습책에 대한 고민을 내비친 것이다.

일부에선 통화 정책 변경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기도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정석 수석연구원은 “5월 이후 미국의 금융 부실 처리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된다면 통화 정책의 기조를 긴축으로 바꾸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금리 인상보다는 통안증권 발행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점진적인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경기 진단 말말말

▶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지금 경제 상황은 경기후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현저히 살아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올해 초 전망한 것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불안 요소가 많다.” -1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혼재돼 있어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쳐 판단하기 어렵다. 지나친 낙관이나 근거 없는 비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12일 연합뉴스 인터뷰

▶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 “아직 안심할 시기는 아니지만… 세계 경제 사이클이 변곡점 근처에 도달했다.” -11일 선진 10개국(G10) 중앙은행 총재 회의

▶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 “경기의 자유낙하가 멈췄다. 아시아가 경제 침체에서 가장 먼저 벗어날 것이다.”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인터뷰

▶ 토머스 쿨리 미 뉴욕대 교수 “세계 경제가 최악을 넘겼다고 본다. 최근 증시 폭등도 회복세를 알리는 신호다.” -11일 CNN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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