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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드는 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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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탁환은 “지금의 한국문학은 단편 같은 장편 시대”라고 말했다. 200매 짜리 이야기를 1000매로 늘린 듯하다는 것이다. [살림출판사 제공]

 김탁환(41)씨에겐 ‘소설가’란 호칭보다 ‘이야기꾼’이란 이름이 더 어울린다. 그는 『방각본 살인 사건』 『열하광인』『불멸의 이순신』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나, 황진이』 『혜초』 등 스케일 큰 장편소설을 꾸준히 써냈다. 문학성만이 아니라 ‘이야기성’을 추구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4년간 스토리텔링을 가르친 그가 강의 핵심만 모은 책 『천년습작』(살림)을 냈다. 12일 그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직접 지었다는 책 제목 ‘천년습작’의 의미부터 물었다.

“매일 매일 습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거든요.”

그는 지난 10년간 하루 8시간씩 매달려 해마다 200자 원고지 기준 4000~5000장씩 글을 써왔다. 아침에 글을 안 쓰면 하루 종일 우울하고 불안했다. 왜 이렇게 쓰고 있을까, 스스로 물었다. “마지막 위대한 소설 하나를 위해 아직도 습작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알고 보니 대문호 발자크나 조각가 로댕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발자크는 자정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중간에 식사·휴식시간 1시간을 제외하곤 글쓰기와 퇴고에 매달렸다. 발자크는 ‘소설 노동자’, 로댕은 ‘조각 노동자’였다.

그는 작가라면 발자크처럼 100% 글노동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100%로 끌어올리려고, 글을 쓰기 위해 자기 삶을 조작하는 사람들이 진짜라 믿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고요.”

‘김탁환의 따뜻한 글쓰기’란 부제가 달렸지만 책은 문장론이나 비유법 등 소소한 글쓰기의 실제를 알려주지 않는다.

“1인칭, 2인칭이 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글쓰기의 핵심은 테크닉이 아니라 진심 그 자체입니다. 작가란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자니까….”

숱한 글쓰기 실용서와는 그렇게 거리를 뒀다. 그럼에도 책엔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는 책에서 “작가란 항상 밑줄 긋는 자이면서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족속”일 거라 적었다. “가장 멍청한 작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초고를 쓰는 이”라며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구상하는 인고의 과정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는 “글쓰기란 매혹 아래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라 정의한다. 글쟁이, 혹은 이야기꾼이 태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빌어먹을 매혹”이라는 거다. 작가는 어린시절 미국 아동문학가 H.로프팅(1886~1947)의 동화 『돌리틀 선생 항해기』를 일주일이 멀다 하고 거듭 읽었다. 그때 소설이 아닌 것에 매혹됐다면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인생은 두 번 사는 게 아니니까, 난 소설을 제일 잘 쓰니까, 소설 외엔 날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까, 하염없이 소설로 가는 수밖에요.”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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