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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위기에 빠진 파키스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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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파키스탄은 현재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의 공격으로 인해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다. 미국 의회는 파키스탄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미 의회의 결정에 따라 파키스탄의 상황은 악화될 수도 호전될 수도 있다. 미국의 지원이 탈레반과 싸우고 있는 파키스탄 정부와 군대에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면 파키스탄에서의 이미지 개선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약속한 장기적인 지원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국내 상황은 오바마 대통령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발표한 이후 악화됐다. 오바마의 새 전략은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을 대테러 전쟁의 성과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서는 수십만 명이 정부군과 탈레반의 치열한 전투를 피해 피란길에 올랐다.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무장세력은 일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펀자브·신드·바루키스탄 등 광범위한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알카에다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이는 파키스탄 북부 지역의 탈레반이 수개월 내에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정부군의 탈레반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 작전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과 탈레반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에 힘입은 것이다. 파키스탄 국민은 정부군과 탈레반 간의 충돌이 국가 존립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군부는 아직도 무장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다. 피란민들에 대한 구호 대책도 변변치 않다. 필자가 최근 만난 정부 관료들은 파산 상태에 이른 재정으로 인해 피란민 구호는커녕 더 이상 무장세력과 싸울 여력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최근 파키스탄 경제를 살리고 피란민을 돕기 위해 긴급 자금 4억9700만 달러를 의회에 요청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파키스탄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4억 달러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 의회는 파키스탄 지원을 기존의 이라크와 아프간 지원과 패키지로 묶을 것으로 요구하면서 승인을 미루고 있다. 미 의회의 승인이 늦춰지면서 파키스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 국민의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긴급 지원에 앞서 미 정부는 향후 5년간 매년 15억 달러씩 파키스탄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또한 의회에서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을 둘러싼 정세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의 탈레반과 싸우기 위해 인도와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고,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의 핵 과학자를 가택연금에서 해제해 미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미 의회는 긴급 자금 지원을 승인해야 한다. 파키스탄 정부는 우선 15억 달러를 조건 없이 지원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지원국의 입장에서 지원금에 대한 올바른 사용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원 조건은 추후에 협의해도 늦지 않다. 파키스탄은 현재 긴급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리=최익재 기자 [워싱턴 포스트=본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