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물러섰다 … 증시 꼭짓점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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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곰(비관론자)의 후퇴. 금융 불안이 진정되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면서 최근 국내외 증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어 달 전만 해도 암울한 전망 일색이던 외국계 투자은행(IB)의 한국 관련 보고서도 장밋빛으로 물들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비관론자들이 낙관론으로 돌아서는 것이 단기 고점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경계론도 나오고 있다.


◆곰들의 변신=전향의 물꼬는 투자전략가 마크 파버가 텄다. 약세장 예측에 능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그는 지난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500지수가 은행들의 실적 개선으로 현재 850선에서 3분기 1000까지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을 내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뉴욕 증시가 하반기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는 섬뜩한 전망을 했던 그였다. 역시 대표적 비관론자였던 로버트 실러(경제학) 예일대 교수도 최근 “주식과 부동산을 살 때”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매주 전문가들의 시장 전망을 집계하는 미국 ‘인베스터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강세장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의 비율이 40.4%를 기록하며 약세장을 예상하는 경우(31.5%)보다 많아졌다. 약세장을 예상한 비율은 2008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에서도 비관론은 한발 물러서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연구원은 “증시가 너무 쉼 없이 올랐다며 조정을 예상하던 곳들도 1500~1600선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곰들이 어쩔 수 없이 황소로 변신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 투자은행들의 긍정적인 전망도 부쩍 늘었다. UBS는 8일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가 단순한 베어마켓랠리(약세장 속 일시적 상승)를 넘어섰다”며 향후 1년간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1400에서 1650으로 끌어올렸다. 모건스탠리도 11일 보고서에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8%에서 1%포인트 올린 -1.8%로 수정했다.

◆비관론자 사라지면 ‘꼭지’=주식시장은 대중의 기대와 거꾸로 간다. 낙관론이 대세가 될 때 증시는 고점일 경우가 많았다. 이를 두고 미국 월가의 전설적 투자가 존 템플턴은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하며 행복감 속에서 사라진다”고 말했다. 2007년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설 때도 기존의 비관론자까지 나서 “3000선까지 갈 것”이란 전망을 내놨고, 이후 반대로 코스피는 추락했다.

이 때문에 비관론이 급속히 사그라지는 것을 오히려 ‘위험 신호’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대표적인 비관론자들의 ‘항복’은 역설적으로 투자심리가 과열됐다는 의미”라며 “특히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너무 앞서 가는 느낌”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비관론의 퇴조는 지나치게 얼어붙었던 심리가 정상화되는 것일 뿐 과열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낙관론이 비관론을 앞섰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경제 블로거이자 투자전략가인 배리 리톨츠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너무 낙관적이 됐다는 말이 들리지만 지표를 뜯어 보면 ‘중립’이라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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