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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축제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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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지난 7일 저녁 서울 세종체임버홀에서는 서울스프링페스티벌의 공식 개막 공연이 있었다. 베토벤·모차르트·슈베르트의 곡과 함께 젊은 작곡가 김솔봉의 ‘해시계 연대기’가 초연됐다. 작곡가 자신이 피아노를 치고, 강동석이 바이올린을, 양성원이 첼로를 켜고, 채재일이 클라리넷을 불었다. 그리고 김지현이 가야금을 타고, 김덕수가 장구를 쳤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색들이 서로 충돌하고 때로 부둥키면서 점점 어우러져 갔다. 음악이 어울림임을 새삼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 18일까지 이어질 서울스프링페스티벌은 성공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프렌즈의 호수 위에 실내악 축제의 배가 떠 있기 때문이다. 데일리 스폰서가 매일매일의 공연을 후원하며 페스티벌의 큰 짐을 나눠 지고 있어 그저 관(官)의 예산에 기대고, 몇몇 큰 기업에 손 벌리는 축제 관행과도 사뭇 다르다. 거기에 연주자들의 수준은 흠잡을 데 없고 그 내용도 알차서 470여 석 규모의 세종체임버홀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 한편, 전통 예향 전주에서는 이달 26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28일까지 사흘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런데 개최일이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전주대사습놀이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사실을 알아보니 1983년 이래 전주시와 더불어 전주대사습놀이를 공동주최하며 이를 전국으로 생중계해온 MBC가 시청률 하락과 재정 상태 악화 등을 이유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것이 발단이었다.

# 본래 전주대사습놀이는 조선 숙종 때 시작된 마상궁술대회에 영조 8년(1732년) 판소리 경연 등을 가미해 펼쳐낸 300년 전통의 경연마당이다. 일제가 폐지해서 60년가량 단절됐던 것을 75년 전주 시민들의 힘으로 되살려내 서른네 해를 이어왔다. 올해도 판소리 명창부 등 9개 부문에 걸쳐 경연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 하지만 시민의 힘으로 복원됐던 전주대사습놀이는 어느새 관과 방송국 주도의 판에 박은 행사로 굳어갔다. 전주시가 매년 1억2000만원을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에 직접 지원해 온 것을 재원으로 삼아 행사를 진행하고 MBC가 무대 설치 및 심사지원 관리업무 등에 1억5000만원을 들여 전국 생방송을 관행처럼 해온 것이 전부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좀 더 많은 이들과 호흡하려는 몸부림은 턱없이 적었다. 물론 판소리 명창들의 등용문이란 의미는 없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리그라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니 방송사가 저조한 시청률과 재정 악화를 이유로 손을 들고 발을 빼자 전주대사습놀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혼돈 상태에 빠진 것이 차라리 당연했다.

# 물론, 가뜩이나 찬밥 신세인 국악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축제요 경연대회인 전주대사습놀이마저 명줄이 끊어질 판이니 전주시든 문화부든 나서서 당장 급한 불은 꺼야 한다. 하지만 시 예산과 방송국에만 기댄 채 수십 년을 변화 없이 안주해온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자체도 변해야 한다. 먼저 전주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서포터스든 프렌즈든 결성하고 전주대사습놀이를 그저 판소리 명창 등용문이 아니라 시민의 축제, 국민의 축제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그래야 전주도 살고 대사습도 살며 국악의 혼도 산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