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을 만나다' 전시회 대담] 2. 김선두 - 이청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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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이 같은 화가 김선두(左)씨와 소설가 이청준씨는 수차례에 걸친 고향골 기행을 다니며 고향을 함께 읽어와 서로의 작품 세계를 피가 통하듯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신동연 기자]

소설가 이청준(65)씨와 화가 김선두(46.중앙대 한국화과 교수)씨가 나란히 서니 나이가 좀 뜨는 집안 형제처럼 보인다. 전남 장흥 한 고향 사람이면서 지난 몇년 함께한 시간이 몸에 스며든 모양이다. 장맛비가 흩뿌리는 7일 오후, 교보문고 강남점 문화이벤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그림, 소설을 만나다'의 네번째 전시 '김선두-이청준전, 학으로 나는 서편제'(11일까지.02-530-0375)에 주인공으로 나선 두 남자에게서 남도의 흥이 절로 흘러나왔다.

"내 소설이 좀 답답하고 까다롭잖아요. 그림으로 옮겨졌을 때 어쩔까 걱정했는데, 참말 재미지네요. 저렇게 풀어놓으니 예쁘잖아요. '눈길'은 화면 한쪽에 어머니가 버티고 계셔서 그런가 신화처럼 푸지고, '소록도'는 역사와 희비극을 뒤섞은 듯 장엄하게 다가오네요."

소설가가 그림 하나하나를 눈으로 더듬는 사이 화가는 "이 선생님 소설과 만나면서 그림이 풍성해지고 깊어졌어요. 작품세계를 확장하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라고 고마워했다.

풍경이나 사람을 그릴 때는 그들이 침묵하는 객체여서 교감이 힘들었는데 소설은 이미 하나의 의식을 갖춘 주체여서 철학적 만남, 울림과 열림의 세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3년 전부터 동향인 시인 김영남씨를 엮어 고향 언저리를 더듬는 중이다. 이씨는 "소설쟁이, 시쟁이, 환쟁이가 각자 고향을 따로 읽어오다가 같이 읽어보자고 고향골 기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같은 땅의 피를 나눠서 그런가 잘 통하네요"라고 했다. "저기 저 '서편제'에 그려진 반쪽짜리 흙덩이 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시오? 우리 셋이 마량 포구에서 술 한잔 걸치고 난 뒤였는데 김 선생이 열심히 스케치한 밑에 시인이 '포구는 슬픈 반달이다'라고 적어 넣은 거라. 그 한마디가 공명을 일으킨 거지." 고향을 화두로 한 세 사람의 작업은 9월 8일부터 서울 인사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김씨의 전시회와 3인3색의 책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내 소설을 화가가 어떻게 읽었을까 어찌나 궁금한지 자꾸 물어봤어요. 소설 읽는 갈래가 몇 있잖아요. 아 그런데 김 선생이 그림으로 내 작품을 갈가리 찢어놓은 거라. 덩어리는 그대로 두고 때로 난만하게, 때로 진득하게 발겨 놓았으니 나는 그를 영혼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화가라 부르게 됐습니다."

두 예술가가 나누는 이야기 속에 소설과 그림은 서로의 몸을 헐고 그들이 태어난 정신의 자궁, 예술의 고향으로 함께 흘러가는 듯했다. 10일 오후 3시 전시장에서 소설가.화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정재숙 기자<johanal@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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