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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돋보기] “기부 약속은 채무와 효력 같아 … 약정 액수 다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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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부한 돈이 기부 목적대로 쓰이지 않았다고 해서 나머지 기부 약속을 어겨선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제5민사부(고재민 부장판사)는 7일 부산대에 305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뒤 195억원만 내고 110억원을 기부하지 않은 ㈜태양 송금조(85) 회장 부부가 부산대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기부 약속이 증여에 해당하는 만큼 민법상 채무와 효력이 같다고 전제했다. 따라서 기부 약속을 했더라도 안 내면 그만이라는 것은 잘못이다.

문제는 ‘기부 약속이 어떤 증여에 해당하느냐’였다. 송 회장은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으로 분명히 했다는 점을 들어 ‘부담부증여(負擔附贈與)’라고 주장했다. 부담부증여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집을 주는 대신 매달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달라고 할 때처럼 일정 조건이 붙어 있는 증여를 말한다. 증여받은 쪽은 구체적으로 부여된 의무를 지켜야 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단순히 증여의 사용 목적만을 지정한 경우에는 부담부증여라 할 수 없다”면서 “기부금 사용 목적이나 사용 방법을 지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부산지법 백태균 공보판사는 “이번 판결은 기부받은 쪽이 기부금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부 약속을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부산대가 기부금을 기부 목적대로 사용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송 회장 부부는 2003년 10월 부산대에 “양산캠퍼스(83만8560㎡) 땅값으로 사용해 달라”며 당시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인 305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2006년 8월까지 195억원을 내놓았다. 당시 부산대 총장이 보낸 “송 회장 고향인 양산에 짓는 캠퍼스의 부지 매입을 도와 달라”는 편지를 받고 송 회장은 기부를 결심했다.

그러나 대학 측이 2004년 6월부터 2007년 2월까지 195억원을 부지 매입이 아닌 건물 신축이나 교수 연구비 등에 사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송 회장은 지난해 7월 남은 기부금을 줄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송 회장은 소장에서 “기부자의 최소한의 요구가 무시당하는 기부 현실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올바른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소송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산대가 기부금 유용을 인정하고, 지출 세목을 밝힌 뒤 공개사과를 한다면 110억원도 흔쾌히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2월 강제조정으로 양측의 분쟁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판결까지 이어졌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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