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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의 자랑’ 환경미화원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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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의 ‘키다리 아저씨들’은 결코 크지 않았다. 환경미화원들은 ‘작은 마음’을 모아 중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큰 일’을 11년째 하고 있었다. 조영회 기자

#1. 1일 오전 10시30분 천안시 성환읍 쓰레기집하장. 10여 명의 환경미화원들이 오전 내내 수거해온 쓰레기를 내려놓고 있다. 한 시간 가량 작업이 이뤄진 뒤 미화원들은 포대에 담긴 유리병과 종이 등 재활용품을 따로 분리했다. 집하장 한 켠에는 미화원들이 따로 분리한 재활용품이 가득 쌓여 있다.

모아진 재활용품들은 고물상에서 수거를 해 간다. 고물상에서는 재활용품가격을 매겨 매달 15~20만원씩 환경미화원들에게 전달한다. 이 돈은 1년에 두 번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2. 지난달 27일 성환중학교 교장실. 성환읍 환경미화원들이 학교를 찾아 장학금을 기탁했다. <작은 사진> 장학금은 110만원으로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성환중 6명과, 인근 동성중 5명 등 11명 에게 전달됐다. 이날 전달식에는 김원재(63) 성환읍 환경미화원 반장과 환경미화원 1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99년부터 11년째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장학금을 주고 있다. 1년에 전체 장학금이 220만원으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장학재단 등과 비교해 적은 금액이지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감동’을 받는다.

◆배우지 못한 설움 ‘나눔’으로 채워= 김재원 반장을 비롯해 16명의 성환읍 환경미화원들은 대부분 50~60대다. 김 반장 역시 60대 초반이다. 한창 학교에 다녔어야 할 50~60년대 보릿고개와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 초등학교를 나왔고 서 너명은 그나마 중학교 졸업장을 땄다. 당시에는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사치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40대 초반까지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다 20년 전인 89년 환경미화원에 선발돼 성환에 정착했다. 김 반장은 새벽녘 일을 할 때 학교 앞을 지나가다 “공부를 더 했었으면…”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정형편이 조금만 더 넉넉했더라면 고등학교까지는 가고 싶었던 게 김 반장의 어릴 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우연히 회식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지금은 퇴직한 윤해철 전 반장이었다. 김 반장은 당시 총무를 맡고 있었다. 즉석에서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박봉인지라 월급에서 일정금액을 떼내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쓰레기를 수거하다 모은 종이·병 등 재활용품을 팔아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연간 200~250만원 가량이 모아진다.

성환읍 환경미화원들은 93년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독거노인에게 연탄과 쌀을 사주고 매달 2~3만원씩을 보냈다. 이 봉사활동은 98년 IMF 때 중단됐다 이듬해인 99년 다시 부활됐다. 이 때부터 봉사활동에서 장학금 전달로 전환됐다.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재활용품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 신문이나 박스·캔·공병 등 돈이 될만한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손수레를 이용해 수거해가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 미화원들에게까지 차례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미화원들은 재활용품을 통한 장학금 마련이 여의치 않으면 급여에서 1~2만원씩을 공제해 기금을 만들 생각이다. 아직 혜택을 받아야 할 학생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학금 받은 학생들 ‘감동’= 장학금은 학교에서 추천한 학생들에게 지급된다. 11년간 매년 11명씩, 121명이 혜택을 받았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있지만 성격이 활발하고 성실한 학생도 장학금 지급대상이 된다.

김 반장은 슬하에 4남을 뒀다. 아내와 아들 네 명 모두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일인데 보람이 있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김 반장을 장학금 전달 이후 자랑거리가 생겼다. 학교 주변에서 쓰레기를 수거할 때 학생들에게 자주 인사를 받는다. “우리 학교에 장학금 주신 아저씨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 피곤함이 모두 가신다고 한다.

표종희 성환중 교장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분들이 학생들을 위해 손수 재활용품을 모아 마련한 장학금으로 어떤 장학금보다 귀하고 값진 것” 이라고 말했다. 김 반장은 정년이 2년 가량 남았다. 그는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장학금 지급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이 넘도록 이어진 자신들만의 전통과 긍지가 쉽게 단절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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