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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정전협정 … 파키스탄·탈레반 국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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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북서변경주(州) 스와트밸리에서 정부군과 탈레반의 교전이 임박하자 주민들이 버스 지붕까지 올라 타고 피란길에 오르고 있다. [밍고라 AP=연합뉴스]


파키스탄군은 북서변경주(州)의 스와트밸리 남부에서 탈레반과 국지전을 벌여 탈레반 무장 요원 77명을 사살했다고 dpa통신이 6일 보도했다.

통신은 교전 과정에서 정부군도 3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파키스탄군은 대대적인 탈레반 소탕을 위해 1만 명에 가까운 정부군을 주 경계 지역에 집결시켰다.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의 북벌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그동안 이슬람교도와의 분쟁이라는 부담과 반미 여론 때문에 탈레반 진압에 미온적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날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정전협정이 파기되면서 주민 수만 명이 전쟁을 피해 피란길에 나섰다”며 “주민 50만 명이 이 지역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정부 측은 이날 한시적으로 통행 금지를 해제해 주민들이 교전 현장을 비울 수 있도록 조치했다.

◆휴지 조각 된 정전협정=WSJ에 따르면 탈레반과 파키스탄군이 충돌한 지역은 북서쪽 국경의 스와트밸리다.

파키스탄 정부는 2월 탈레반이 스와트밸리 등 북서부 3개 지역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율법(샤리아)에 따라 통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신 이 지역에서 영구적으로 휴전하자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러나 탈레반은 지난달 아시프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서명해 발효되자 오히려 공세를 강화해 수도 이슬라마바드 주변 지역을 무장 점거했다.

스와트밸리 동남부 부네르·만셰라 지역으로 진격해 지방정부 청사와 통신시설 등 행정 거점을 장악한 것이다. 정부군의 반격으로 바로 철수했지만 이 지역 주민 생활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조하는 탈레반의 영향권 아래 있다. 이 지역은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50~100㎞ 떨어져 있어 파키스탄의 숨통을 죌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파키스탄 정부는 우물쭈물하다가는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파키스탄 최대 펀자브주가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싸여 있다. 탈레반의 남진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선 상황인 것이다.

적극적인 탈레반 진압을 요구해 왔던 미국이 4억 달러에 달하는 장비 현대화 자금과 병사 훈련 비용을 지원하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한 것도 탈레반 소탕에 나선 배경의 하나다. 파키스탄군 고위 관계자는 “탈레반과 맞붙기 위해 스와트밸리에 병력 8000~1만 명을 투입할 준비를 끝냈다”고 WSJ에 밝혔다.

곧 전장으로 변할 스와트밸리의 주민들은 생활 기반을 버리고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버스·트럭 등은 피란민으로 발 디딜 틈이 없고, 걸어서 탈출하는 사람도 줄을 잇고 있다. 페샤와르로 피한 부네르시의 아프사르 칸 시장은 “스와트에선 신의 이름을 빙자해 이슬람교도들이 다른 이슬람교도를 살해하고 있다”며 탈레반의 잔학상을 증언했다.

◆핵무기 안전 비상=파키스탄 정부는 “핵무기와 관련 시설은 최강의 부대가 이중삼중으로 경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의 안전 문제에 우려를 표시하는 등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핵무기를 탈취하거나 탈레반에 동조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연구소나 핵 시설에 잠입할 수 있어 파키스탄 핵무기 관리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에 밝혔다.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BBC와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군은 핵 통제를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더욱 확실한 보장을 받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파키스탄 군부에 탈레반의 세력이 침투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취약한 핵 통제에 대한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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