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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간 비문 한 자 한 자 본떠 만들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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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다른 서체 개발 때보다 힘들었지만 보람은 더욱 큽니다.”

‘광개토호태왕비체’(광개토대왕비체)라는 서체 개발에 참여한 경남도청 공보관실 윤판기(54·6급·사진)씨의 소감이다. 그는 6일 공동 개발 업체로부터 서체가 저장된 CD를 받았다. 곧장 컴퓨터에 서체를 띄워 시험해본 뒤 만족해했다.

윤씨가 광개토호태왕비체 개발에 나선 것은 지난해 1월 초. 서체 개발 전문회사인 폰트뱅크(대표 손동원)가 그의 경력을 알고 제의해왔기 때문이다. 윤씨는 20년 동안 광개토대왕비 서체를 연구해왔다. 1993년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는 광개토대왕비 서체로 특선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고구려연구회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의 정식 시호는 광개토호태왕”이라며 “국내에는 광개토호태왕비 서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 개발한 것은 조잡해 널리 사용되지 않아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윤판기씨가 개발한 광개토호태왕비체. [경남도 제공]


윤씨는 폰트뱅크와 함께 곧장 광개토호태왕비 서체 개발에 들어갔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한자는 모두 1775자. 이 가운데 비바람에 마모돼 알아보기 어렵거나 중복되는 글자를 제외한 500여 자를 한 자 한 자 베껴 쓰기 시작했다. 비문에 없는 글자는 기존 글자를 바탕으로 창작했다. 평일 퇴근 이후 시간은 물론 공휴일도 모두 글쓰기로 보냈다.

완성된 글자를 화선지에 옮겨 쓸 때는 목욕한 뒤 한복을 갖춰 입고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해서 한자 4888자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호를 딴 한글서체 ‘한웅체’ 2350자도 개발했다.

윤씨는 “광개토대왕비 서체는 기교를 부리지 않아 소박하면서도 장중하고 우직함이 묻어나는 옛날 예서풍”이라며 “개인용 컴퓨터는 물론 각종 출판·인쇄물, 관공서 공문 제목, 상장, 이정표, 책 표지 등에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1985년 공직생활을 시작한 윤씨는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수십 차례 입선했다. 대한민국서예대전과 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글·한문 서체는 일본·중국에서 개발된 걸 주로 사용하다 2005년 디자인보호법 시행 후 국내에서 주로 개발되고 있다”며 “서체 개발은 그 나라의 국력과 다름없다”고 했다.

폰트뱅크는 광개토호태왕비체를 담은 CD를 PC용은 10만원, 현수막 같은 대형 글자용은 13만원에 시판하고 있다. 윤씨는 판매 수익금의 3분의 1을 받는다.

창원=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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