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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스탐의 나라' 스웨덴 골프 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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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는 페리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결국 육지가되었다. 덴마크를 통해 육로로 연결 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 덴마크와 스웨덴을 연결하는 오레순트 다리가 개통되었다. 총 공사비 37억 달러, 공사기간 7년 대장정 끝에 완공된 세기의 다리 오레순트. 바다 한 가운데에 길이 4㎞의 인공섬을 조성하고 해저 터널과 해상 도로를 번갈아 달리며 두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 위에서의 바다 풍경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게 있어 스웨덴은 ‘강한’ 이미지의 나라였다. 잘 지지 않는 축구팀, 견고한 자동차 볼보, 팝그룹 아바, 비욘보리… 하지만 골프라는 운동을 시작한 이후 스웨덴은 ‘그녀의 나라’가 되었다. 골프 중계방송에 맛들이기 시작할 무렵 골프계를 주름 잡고 있던 철의 여인 소렌스탐! 강인한 이미지와 포커 페이스, 근육질의 몸매 때문에 ‘여전사’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던 그녀의 무적 포스…. 뭣보다 그 많은 상금의 상당량을 고세율 조국에 헌납했을 억울함에 대한 연민도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박수칠 때 떠난다 했던 은퇴 선언 마저도 멋있었던 그녀, 소렌스탐의 나라 스웨덴에 우리도 골프채를 들고 입성했다.

처음 발을 내디딘 스웨덴 남단의 Malmo에는 스웨덴 랭킹 2위의 명문 골프장 Barseback GC가 있었다. 바스백 골프클럽은 1969년에 골프를 좋아하는 이 지역 사람들이 클럽을 결성하여 파72의 Master 코스를 조성하였고 1989년에는 파71의 도널드 스틸 코스를 완성하면서 총 36홀의 골프장이 되었다. 그 후 솔하임 컵 대회를 비롯하여 내노라하는 큰 대회들을 많이 개최했단다. 솔하임컵은 미국과 유럽 여자 대표 간의 국가대항 골프대회로 남자의 라이더컵과 유사하다. 한국의 태극 낭자들이 출전하지 않아 국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LPGA에서는 꽤 비중 있는 대회다. 정서상 우리의 한일전 골프대회가 연상된다. 오랜 기간 소렌스탐이 유럽 여자팀을 이끌어온 덕에 스웨덴에서의 솔하임컵 인기는 더욱 높은 모양이었다. 마침 우리가 찾아간 기간은 솔하임컵 기간이었다. 비록 올해에는 Barseback이 아닌 다른 골프장에서 대회가 개최되고 있었지만 Barseback 코스 여기저기에는 소렌스탐을 필두로 한 대형 입간판들이 대회를 홍보하고 있었다.

2007년에는 소렌스탐이 호스트한 ‘Ladies European Tour’이 Master 코스에서 개최되기도 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소렌스탐과 인연이 깊은 골프장인 모양이다. 클럽하우스에도 소렌스탐이 대회 기간 중 끼던 장갑과 사진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주로 Masters 코스에서 큰 대회가 개최된다 하여 우린 그 코스를 선택했다. 6,625미터의 긴 전장과 빠르고 트릭이 많은 그린 때문에 고생할 것이라는 매니저의 충고를 뒤로 하고 1번 홀로 향했다.

위치 상으로는 분명히 바닷가에 위치한 골프장인데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인해 내륙 한가운데 있는 파크랜드 골프장 느낌이 전해졌다. 하지만 바다와 맞닿은 홀은 영락없는 링크스였다. 덕분에 같은 골프장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 골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관리도 뛰어났다. 페어웨이 잔디는 마치 카페트 위를 걷는 듯 잘 손질되어 있었다. 페어웨이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소나무들은 철갑을 둘러 보호받고 있었다. 넓지 않은 페어웨이에서 숱하게 공으로 얻어맞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일품인 것은 석양 무렵의 코스 전경이었다. 바다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일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 저녁 식사 테이블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많이 이용되는 모양이었다. 골프를 친 후 식사를 하는 손님보다 저녁 식사를 위해 클럽하우스를 찾은 손님의 수가 훨씬 많아 보였다. 다만 물가가 비싼 스웨덴, 하고도 최고 명문 코스, 하고도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이니 고비용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덕분에 그날 우리의 엥겔 계수는 평소의 2~3배 정도 되었을 것이다. 스웨덴 물가… 소렌스탐 만큼이나 무시무시했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