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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PD수첩이 만든 ‘폭력 시위의 나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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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검찰의 ‘PD수첩’ 제작진 수사와 촛불집회 재개 소식을 유럽 언론을 통해 보면서 문득 『커뮤니케이션의 독재』라는 책이 떠올랐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을 지낸 이냐시오 라모네가 몇 년 전 쓴 책이다. 라모네는 이 책에서 TV가 제공하는 정보의 함정을 지적했다. 그는 TV 보도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여러 영상은 하나의 새로운 ‘감성적 정보’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그 정보가 ‘진짜’ 진실이건 아니건 시청자는 그 정보의 노예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TV 영상은 천 마디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PD수첩은 지난해 주저앉는 소와 그런 소를 먹고 숨진 것처럼 묘사된 한 흑인 여성의 어머니가 흐느끼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는 우리 국민에게 수천 마디 말보다 훨씬 더 큰 분노와 공포를 몰고 왔다. 그러나 이런 영상의 조합물이 만든 감성적 정보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라모네의 이론에 따르면 PD수첩이 ‘미디어의 독재자’가 돼 온 국민을 허위 정보의 노예로 만든 셈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PD수첩 관계자들은 마치 독립 투사나 되는 양 행세한다.

더욱 중요한 건 PD수첩과 이로 인해 불거진 ‘촛불’이 나라 밖에서까지 영상의 독재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외국 TV에 줄기차게 등장한 시위 장면이 세계인의 머릿속에 우리나라를 폭력 시위가 끊이지 않는 불안한 나라로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 경제의 전망을 듣기 위해 프랑스의 한 아시아 경제 전문가를 만났다. 그는 “한국 경제는 저력이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시위가 끊이지 않는 불안한 정치상황이 변수”라는 말을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프랑스 TV에서 수개월간 내보낸 촛불집회와 폭력 시위 영상이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촛불 1주년을 맞아 서울이 다시 어지러운 모양이다. 더 이상 명분 없는 행동이 세계인의 머릿속에 대한민국을 ‘폭력 시위의 나라’로 고착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