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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싸울 상대가 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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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런 자가당착이 곧 현실이다. 루소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때는 버렸지만 지금은 더 못 가르쳐 안달인 게 다를 뿐이다. ‘교육 평준화’ 외치면서 제 자식은 외고 넣고, ‘사교육 철폐’ 거품 물면서 제 자식은 족집게 과외 시키는 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 아닌가. 최근 교육개혁을 두고 벌어진 정부 부처 간 논란이 가소로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선 교육부가 정책결정에서 소외됐다고 서운할 건 하나도 없을 듯하다. 여태껏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지를 보여준 적조차 없었던 까닭이다. 오죽하면 없어져야 할 부처로 한 손에 꼽혔었겠나. 미래를 개혁한다는 위원회가 총대 메길 자처한 것도 교육관리들에 맡겨놔서는 백년하청이란 정당한 위기의식 때문이었을 터다. 그럼에도 위원회의 해법 또한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건 먼저 할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교육 수요자들의 말과 짓이 서로 다른 건 당위(sollen)와 존재(sein)가 유리된 탓이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 가는 데 모자람이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공교육보다 품질 좋은 사교육이 존재하고, 하나 둘 그것에 기대다 보니 보다 실력 있는 강사를 좇는 출혈경쟁이 빚어지고 더불어 사교육비가 가계를 위협할 정도로 치솟는 것이다. 대책이 필요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고작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라는 건 허무하다. 여태껏 유명무실하던 단속이 불현듯 효과를 거두고 학원들이 대응 전략을 수립하지 못할 만큼 갑자기 멍청해진다 쳐도 공교육의 구멍을 아쉬운 대로 동네 보습학원에서 메워온 학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 질문에 준비한 대답이 바로 전가의 보도, ‘방과후 수업’인 모양인데 도대체 하루 종일 수업시간에는 뭘 하고 방과후에 좋은 선생들 따로 모셔다가 공부를 시키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공교육은 팽개쳐 두고 정부가 나서 사교육을 양성하겠다는 것과 뭐 다른가. 그것도 (학원강사 개인이 연구원 10명을 고용해 학습교재를 만든다는) 명품 사교육은 금지하고 그저 공교육보다 조금 나은 중저가 사교육만 키우겠다는 얘기 아니고 뭐냔 말이다.

나는 “적당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실세 위원장 말에 100% 동의한다. “정권 차원에서 처절하게”라는 데도 힘을 다해 밀어주고 싶다. 하지만 겨누는 방향이 틀렸다. 그가 전사를 각오하고 싸워야 할 상대는 학교 선생님들이지 학원 강사들이 아니다. 공교육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먼저란 얘기다. 그러면 절로 없어질 게 사교육이다.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들은 월급을 더 주고 그렇지 못한 교사는 과감하게 퇴출해야 한다. 싸구려 살리자고 고품질 상품을 못 팔게 하는 건 그가 말하는 경제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조준에서 오류가 난 건 어떻게든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현 정권의 조급증 탓이다. 구조조정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 정권안보 차원의 접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행여 ‘통한의 눈물’을 쏟을까 노후 대비도 포기하고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학부모들을 또 한번 기만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따라 커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정권안보가 될는지는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