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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파리의 연인' 박신양씨 옷도 지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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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안방극장에선 배우 김정은씨가 '신데렐라(고학생)'로, 박신양씨가 '백마 탄 왕자(재벌 2세)'로 나오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큰 인기다. 그러다 보니 박씨가 극중 역할에 맞춰 매회 갈아입는 정장도 덩달아 관심거리다.

"드라마가 뜨니 기분이 좋네요. 촬영을 앞두고 우리 공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스무벌이나 지어 보냈거든요. 그런데 박씨가 스타일을 강조하느라 허리를 너무 잘록하게 파달라고 하는 바람에 옷이 몸에 편하게 맞는 것 같지는 않아요."

LG패션 신사복 브랜드 '알베로'의 수석 패턴사 박광수(56)씨. 40년 가까이 신사복 재단의 외길을 걸어온 그는 인터뷰 첫머리부터 직업의식을 숨기지 못하고 톱스타인 박씨의 패션 감각에 '애정어린' 일침을 가했다.

"원래 '신사복은 한 올을 다툰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정밀하게 만들지 않으면 입은 사람이 불편하다는 얘기죠. 입은 듯 안 입은 듯 편안한 옷이 가장 좋은 옷이에요."

신사복 제작과정에서 박씨 같은 패턴사가 하는 일은 치수를 재고, 치수 별로 옷본(패턴)을 뜨는 것. 옷본에 따라 완성된 옷의 매무새가 좌우되기 때문에 패턴사는 '신사복 업체의 꽃'이라 불린다.

"외국에 가보면 80세.90세가 넘은 패턴사도 일을 계속 하던데 우리 회사에선 제가 최고참이에요. 고교 2년 때 양복점 보조부터 시작해 수석 패턴사까지 됐으니 이만하면 출세했지요."

박씨는 부산시 광복동에 있는 '김석창 테일러'에 아버지 옷을 찾으러 심부름 갔다가 신사복 만드는 과정을 보고 한눈에 매료됐다. 다음날부터 학교를 '땡땡이치고' 찾아가 졸라댄 끝에 책 대신 줄자와 핀을 잡게 됐다. 이후 지금도 남아있는 부산 '만우양복점'을 거쳐 1976년 반도상사(LG패션의 전신)에 입사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박씨는 "최근 손님들의 취향이 까다로워지면서 맞춤복이 다시 뜨고 있다"며 "비록 기성복 브랜드에서 일하지만 손님들이 원하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 맞춤 서비스도 해준다"고 했다.

지금까지 대통령(노태우 전 대통령)에서부터 천하장사(씨름선수 이봉걸)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의 옷을 맞춰주었다는 박씨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양복점에 들어가는 걸 그토록 반대하셨던 아버지(지난달 작고)께서 '우리 아들이 맞춰준 옷이 최고'라고 하실 때 가장 기뻤다"고 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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