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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요 같네" 교가들의 세련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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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솟아 오른…' '○○강 줄기 따라…' 학창 시절 우리들이 부른 교가는 대게 이같은 가사로 시작한다. '교가'는 으레 학교의 주변 자연 환경이나 교훈과 연관시켜 가사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멜로디나 박자도 단조로워 딱딱한 느낌을 줬다. 따라서 행사 때가 아니면 잘 불리워지지 않았다.

그랬던 교가들이 요즘 세련되게 변하고 있다. 유행가처럼 가사에 '사랑'이 들어가는가 하면 멜로디나 박자에 대중 가요같은 감성적 느낌이 묻어난다. 학교측은 '교가라고 해서 반드시 딱딱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젊음과 창의적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며 변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학교 자료이미지=중앙DB]

◇ 젊어진 대학 교가들 = 교가 변신의 선두 주자는 부산 신라대학교(구 부산여대)다. 작곡가 윤종신이 제작한 '신라인의 노래(부제: 꿈 그리고 한가지)'는 재학생은 물론 네티즌 사이에서도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2004년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이 노래는 기존 교가와 함께 학교를 대표하는 '제 2의 교가'로 통하고 있다. '토이' 출신 보컬 김연우가 불렀으며 가사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에 맞는 젊은 감성이 묻어난다. '내가 이루려 하는 그 꿈이 보이는 듯 하루하루가 소중한 나의 스물 즈음에 나의 작은 가방에 채우려 하는 건 책과 사랑 그리고 또 한 가지…' 앞 부분만 들으면 교가인지 가요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교가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은 노래 맨 마지막에서야 나온다. '바다는 건너기 위한 것 푸르름을 가로질러 꿈이 닿을 때까지 이제 시작인 내 젊음은 모든걸 이룰 수 있어 신라인은 커다란 사람'.

2004년 이 학교의 50주년사업추진단은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으며 학교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신라대 관계자는 "대학이 좀 더 젊은 분위기로 거듭나야겠다는 취지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며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준교가격인 '캠퍼스송'"이라고 설명했다. 인기가 뜨거운 만큼 이 학교는 '신라인의 노래'를 올해 11월 개교 55주년을 맞아 독창·중창·합창 등 다양한 장르로 편곡하고 뮤직비디오도 다시 각색해 인터넷 상에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한국항공전문학교 및 같은 재단 산하의 국제요리제과전문학교·한국미용전문학교·국제호텔관광전문학교의 공동 교가 '소중한 열매'도 가요같은 느낌으로 유명하다.

인기그룹 '슈퍼주니어'의 성민과 '천상지희'멤버들이 부른 이 노래는 2007년 제작됐으며 아이돌그룹의 유행가처럼 풋풋하고 경쾌한 느낌이 묻어난다. 재학생들이 이 노래를 담은 뮤직비디오를 자체 제작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항공전문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휴대전화 컬러링이나 벨소리로 설정하는 등 교가를 매우 좋아하고 있다"고 전했다.

◇ 고등학교 교가도 가요풍 대세 = 고등학교도 교가의 변신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주목 받고 있는 교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외국어고등학교(용인외고)의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 학교는 세련된 디자인의 교복과 탄탄한 메뉴의 급식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교가 역시 기존의 틀을 깨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2007년 교장이 가사를 쓰고 음악 교사가 작곡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대중 가요나 인기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처럼 부드럽고 감동적인 느낌이다.

이 노래를 작곡한 김정욱 교사는 "예전 교가는 가사가 7·5조 시조처럼 정형화 돼있고 멜로디도 전형적이어서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학생들이 틀에 박힌 교가라고 느끼지 않게끔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울산에 신설된 범서고등학교의 교가도 화제다. 이 노래는 '아파트'로 유명한 가수 윤수일이 작곡해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윤수일과 고등학교 동문인 김익근 교장이 썼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로큰롤(rock'n'roll)처럼 경쾌하다.

이 학교 관계자는 "요즘 교가 추세는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하고 많이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교가를 참 좋아한다"고 전했다.

작은 산골 초등학교의 교가가 세련되게 변신한 사례도 있다. 키즈팝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가수 김현철은 지난해 KBS창원방송총국의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전교생 24명의 작은 산골 학교 경남 함양 금반초등학교 24명의 어린이들을 위해 새 교가를 만들어줬다.

고리타분했던 교가가 권위를 벗어 던지고 신선하게 변신하는 이유는 학생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에는 교가를 강압적으로 외우게 하는 목적이 컸지만 요즘엔 무거운 권위를 탈피하는 추세"라며 "학교가 주장하는 교가가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교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김진희 기자

▶이색 교가 들으러 가기

-신라대학교 캠퍼스송 (윤종신 작사·작곡)

-용인외고 교가

-범서고등학교 교가 (윤수일 작곡)

-한국항공전문학교 교가 (슈퍼주니어 성민·천상지희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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