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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를 브로드웨이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2호 34면

배우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으로 영화상을 받을 때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올려놓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예술의 본성을 짚어낸 통렬한 맛도 있다. 아무리 밥상이 근사하게 차려져 있어도 숟갈이 없으면 먹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예술은 예술적 재료를 소비자가 즐길 수 있게 안내하는 행위다. 밥상으로 치면 수저를 올리는 행위인 셈이다. 올 들어 나는 세종로 거리를 국내외 관광객들이 ‘맛있게 즐기게’ 재창출하자는 뜻으로 ‘세종벨트’로 명명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이미 세종로의 세종문화회관 쪽 거리엔 정동극장, 난타극장, 시립역사박물관, 금호아트홀, 그리고 맞은편 거리엔 KT아트홀, 교보문고, 점프, 사랑하면 춤을 등의 전용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이전 발표와 함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전용관이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개장했다. 바로 이런 일들을 누군가가 서로 묶어내고 공동 마케팅으로 꿰어줘야 한다.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예술작품은 해당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든다. 미국 뉴욕에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에 웨스트엔드가 있다면 서울에는 세종벨트가 있음을 내세우고 싶다. 세종문화회관이 세종벨트, 즉 ‘한류(韓流)문화공동체’의 선포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관광 상품을 공동으로 관광객에게 알리고, 또 서울 문화의 감동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공론과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누군가 나서야 한다.

세종벨트 구상 가운데 하나는 전통공연과 난버벌 퍼포먼스, 또는 클래식 무대를 몇 가지로 묶어 한류여행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시와 문화관광체육부를 비롯해 서울관광협회 등 여러 관계자와 더 의논해야겠지만 난타의 송승환 사장은 새로운 ‘더 카(the car)’라는 버전을 만들고 있다. 점프의 김경훈 사장과 비보이의 최윤엽 사장도 오래전부터 쌓아온 내공이 있다.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도 별자리로 꿰어야 일목요연해진다. 한국의 관광상품을 제대로 꿰기만 한다면 서울 관광객 1200만 명 유치는 의외로 간단하다. 한번 와서 감동한 사람이 재방문하거나 우리의 홍보대사가 돼준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머지않아 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점하고 있는 아시아인들이 브로드웨이보다 먼저 찾고 싶은 공연무대로 세종벨트를 선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미국까지 가지 않고 도쿄의 디즈니랜드를 찾고 있지 않은가.

사실 문화란, 누군가에 의해 선도돼야 한다. 특히 문화와 예술은 소수의 선각자가 먼저 일을 저지르고, 나머지 이해당사자들이 따라오면서 약간의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뉴욕의 소호와 첼시가 그렇고 베이징의 다산쯔(大山子)가 그러하다. 여느 백화점의 개점처럼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고 자연스레 보완해 나가면서 스스로 그러해지는 것이다.

다양한 관심과 비판도 필요하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수많은 사람의 애정과 질책, 열정의 손때가 묻어 있다. 다만 시시비비가 두려워 주저하거나 눈치보기 행정에 타이밍을 잃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한류의 감동과 신바람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광화문광장의 개장과 함께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적인 한류의 새로운 물꼬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다 차려진 밥상에 수저를 올려 세종로를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로 만들자. 마침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지고 그 아래 ‘세종 이야기’라는 스토리텔링의 보물상자가 만들어지면 세종벨트는 더욱 가보고 싶은 의미 있는 명소가 될 것이다. 단순히 보는 곳을 넘어 우리 모두 즐기고 누리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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