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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만난 세 어른, 김수환·강영훈·장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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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35면

나는 1970년대 말부터 10여 년 동안 ‘영원한 도시’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았다. 모든 면에서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이었다. 나와 AP 통신사 특파원이던 남편에게 로마의 삶을 더욱 값지게 만든 것은 훌륭한 분들을 만나고, 또 사귈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가 엘리엇 카터 등 음악인들과의 교류 또한 즐거웠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는 세 분, 고(故) 김수환 추기경, 강영훈(당시 주로마교황청 대사) 전 총리, 그리고 로마 교황청에서 일하던 장익(현재 춘천 교구장) 주교다.

김 추기경은 로마에 자주 오셨는데 장익 주교의 안내로 우리 집에서 저녁도 드시곤 했다. 다른 나라 출신의 추기경들, 높은 자리의 주교들과도 알고 지내던 우리에게 김 추기경의 겸손과 소박함은 언제나 뜻밖이었다. 그 겸손의 ‘비화’ 하나를 소개한다.

80년 초반으로 기억하는데, 남편과 함께 친지 방문을 위해 뉴욕행 팬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즈니스석에 막 자리를 잡고 앉는데 평(平)신부복을 입은 김 추기경께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어느 자리에 계시느냐’고 여쭙자, 웃으면서 일반석 쪽을 가리키셨다. 남편이 황급히 자기 자리에 앉으시라 권하며 소매를 당겼는데도 추기경께서는 한사코 고사하며 당신 자리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곧 승무원을 불러 “지금 우리와 말씀 나눈 분이 한국에서 온 추기경”이라고 일러주었고, 조금 후 기장이 나오더니 김 추기경을 일등석으로 안내해 드렸다.

나중에 기장이 알려줘서 고맙다며 김 추기경께서 ‘일반석에 그대로 계시겠다’고 우기는 것을 “안전비행을 위해서도 일등석으로 가셔야 한다”며 반강제로 자리를 바꾸게 했다고 웃었다. 덧붙이기를, 공항에서 체크인할 때 다른 추기경들이 하는 것처럼 수행원이나 본인이 신분을 밝혔다면 처음부터 일등석으로 안내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번 머리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교회의 ‘왕자’로 불리는 추기경 직함을 가진 김 추기경은 교회의 본산인 로마에서조차 보통사람으로 지내신 것이다.

김 추기경은 군정 당시 나라 걱정도 많이 하셨는데, 특히 강영훈 대사님을 만나서는 노골적으로 정국에 대한 말씀을 하곤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86년 가을 김 추기경이 로마에 오시자 강 대사가 저녁을 대접한다며 우리 부부까지 댁으로 부르셨다. 김 추기경, 강 대사 내외,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다섯 명이었는데 저녁 내내 추기경은 서울의 어려운 정치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군정은 빨리 끝나야 하고 야당 지도자들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씀을 두세 번씩이나 하셨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 대사가 남편에게 “이 중요한 말씀을 기사화해 보면 어때요?” 하는 것 아닌가? 남편이 추기경께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여쭙자, 그는 “누가 내 얘기를 듣겠습니까? 쓰시려면 쓰세요” 하고 대답하셨다. 그렇게 해서 AP통신을 통해 나가게 된 기사가 서울에서 한동안 물의를 빚은 “김수환 추기경의 로마 발언”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강 대사의 행동은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치라고는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는 나조차도 ‘군인은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기사를 쓰라고 제의하시는 강 대사의 말이 의외로 들렸으니 말이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장군, 외교관, 국회의원, 국무총리, 적십자사 총재 등으로 봉사하면서 행동으로써 나라 사랑을 실천해온 강영훈 전 총리를 가까이 알고 지낸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장익 주교는 로마 시절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난 사람 중 한 분이다. 로마에 주재하는 외국 기자들이 장 주교를 ‘김 추기경의 외교부 장관’이라고 부를 만큼 장 주교는 늘 가까이에서 김 추기경을 보필했고 교황청 내에서 한국의 문화대사 역할을 하셨다. 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교황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주인공이기도 하다. 장 주교는 영어·이탈리아어·독일어 등 여러 나라 말에 능통하고 문화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우리 전통문화의 멋, 일본이 서울의 궁과 옛 건축물들을 마음대로 허물고 바꾸어 놓은 역사, 그리고 우리의 것을 되찾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오랫동안 못 뵀지만, 목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계실 뿐 아니라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도 여러모로 노력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이렇듯 로마가 내게 준 제일 큰 축복은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에 앞장선 세 어른이었다. 지면을 빌려 그분들의 사랑과 열정에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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