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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선 악마, 밑에선 소심남,코믹하고도 슬픈 이중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2호 06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딱 일치한다면 얼마나 해피한 인생일까마는, 사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여기 하루를 마감할 때마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라고 곱씹는 한 남자가 있으니, 만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와카스기 기미노리 작)의 주인공 네기시다.

이영희 기자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무대 위에서의 그는 악마의 메이크업에 이마에는 ‘살(殺)’자를 새기고,
과격한 노래와 선정적인 퍼포먼스로 광신도의 추앙을 받는 ‘데스메탈(Death metal)’계의 교주 ‘크라우저 2세’다. 그러나 화장을 지우고 가발을 벗으면 버섯머리를 한 ‘우엉남(우엉처럼 가느다란 몸매와 소심한 마음을 가진 남자)’으로 돌아온다. 팬들에게 그는 연쇄살인범에 마약중독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술·담배는 물론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도 못 하는 순진남이다. 그의 꿈은 귀엽고 말랑말랑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가수. 하지만 사람들은 “여자는 나의 노예, 인간은 모두 고깃덩어리” 같은 가사를 내뿜는 그에게만 열광하니 미칠 노릇이다.

일찍이 ‘엽기+코믹’ 만화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두 작품이 있었다. ‘이나중 탁구부’와 ‘엔젤 전설’이다. ‘이나중’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 탁구부 아이들의 지저분한 행각을 그린 ‘이나중 탁구부’는 웬만큼 비위가 좋지 않고선 참아내기 힘든 더러운 설정(똥·구토·가래 등)으로 원초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명작이었다.

‘엔젤 전설’은 악마의 외모 안에 천사의 마음을 지닌 한 고등학생의 눈물겨운 분투기.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는 이 둘의 매력을 적절하게 뒤섞었다. ‘너와 함께 먹은 라즈베리 케이크’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무대에서는 “너와 함께 먹은 고양이”를 외쳐야 하는 네기시의 고달픈 인생이 만화의 웃음 코드. ‘데스메탈’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배설과 가학적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이나중’을 뛰어넘을 정도다.

2005년 연재 시작과 함께 열광적인 팬들을 모아온 이 만화는 영화로도 제작돼 이번 달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막 나가는’ 만화 속 장면들이 어떻게 영상으로 옮겨졌을 지 궁금하다. 기대를 갖게 하는 건 주인공 네기시를 맡은 배우 마쓰야마 겐이치(24·사진). 영화 ‘데스노트’에서 천재 소년 ‘엘(L)’로 출연해 스모키 화장의 진수를 보여 준 그는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는 젊은 배우 중 하나다.

마쓰야마는 ‘데스노트’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 수많은 영화에 조연 혹은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작품마다 이미지가 너무 달라 같은 배우임을 눈치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알고 보니 영화 ‘나나’의 노란 머리 베이시스트 신 역할도, ‘린다린다린다’에서 배두나에게 서투른 한국말로 사랑을 고백하는 소년도 그였다. 얼마 전엔 밤 늦은 시간 케이블 TV를 보다 모 영화채널 단골 방영작인 에로영화 ‘완전한 사육4’에 ‘폭력 남친’으로 출연한 마쓰야마를 발견하고 말았다. 카리스마 배우를 꿈꿨으나 현실은 에로영화 단역이라니, 그야말로 네기시의 슬픈 혼란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필모그래피 아니겠는가.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어·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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