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기구매-금융지원 연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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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21일 한국을 찾았다.

방위력의 상당부분을 미국과의 군사협력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 요즘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환영할 일이다.

우리 관계자들과 만나 한.미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양국간 협력증진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고 바람직할 뿐더러, 경제난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에게 그러한 다짐은 더욱 미덥고 마음 한 구석의 근심을 덜어 줄 수 있다.

그의 순방은 비록 4개월 전에 예정됐다가 늦춰진 아시아 7개국 순방계획을 되살린 것이라고 하지만 아시아국가들에는 미뤘던 약속이행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국이 항상 신뢰할 만한 우방이라는 생각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코언 장관이 아시아 순방 벽두에 "아시아 국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시기가 좋든 안 좋든 미국은 항상 굳건한 동맹국이며 우방이라는 점을 재확인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 고 한 말은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내용이다.

우리는 그러한 코언 장관의 말에 유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방문길에 오르며 나돌기 시작한 이야기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군사판매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논의다.

미국의 그러한 관심은 일부 상.하원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IMF 금융지원과 한국의 신무기구매사업 발주를 연계할 것을 요구한다는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정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국방예산을 2조원 가량 삭감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투력강화 사업으로 추진중이던 조기경보통제기 (AWACS) 등 첨단무기 구매사업의 유보가 불가피한 형편이다.

국정의 최우선순위라 할 안보문제까지 뒤로 미루는 우리의 쓰라림을 미국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이용해 금융지원과 무기판매를 연계하려는 일부 정치인의 속셈은 오히려 한.미간의 신뢰할 만한 동맹관계를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코언 장관이 귀담아들어야 할 고언 (苦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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