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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즐겨읽기] 날카롭고 능청스레 비꼰 이 시대의 속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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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우디 앨런 지음, 성지원·권도희 지음
이우일 그림, 웅진지식하우스
240쪽, 1만2000원

이 단편소설집의 부제를 단다면 ‘우디 앨런의 농담’쯤 되겠다.

“지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이거나, 한 실체의 본질이거나, 또는 그 본질의 양태이다. 다만 그것이 둔부에 쌓일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다이어트 책에서 발췌한 글이라나.

‘끈 이론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의 주인공은 새 여비서에게 추파를 던진 이유를 과학 이론으로 변명한다. “와우, 지금 이 순간 우주 만물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느냐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느냐에 관해 논쟁 중이라면, 우리 켈리 양을 한번 보라. 그녀는 단연코 파동이 분명하다. 냉수기로 걸어갈 때마다 그녀는 파동친다.”

‘미키 마우스, 법정에 서다’에선 미키 마우스가 증인으로 출석해 디즈니 캐릭터와 할리우드 스타에 대해 증언한다. 톰 크루즈에게 원하는 배역을 전부 빼앗기고 있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도널드 덕이 파티에서 고주망태가 돼 니콜 키드먼에게 추근댔고 , 구피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우산을 펴고 뛰어내리다 심하게 다친 뒤 진통제에 의존해 약물중독이 되었단다. 자신들의 실체를 까발리는 책을 쓰는 유모를 독살하려는 부부(‘오, 친애하는 유모여’), 아들을 고급 사립유치원에 넣으려고 뇌물을 쓰다 파산하는 부부(‘탈락’) 등 속물근성에 사로잡힌 등장인물들은 다들 어디선가 본 듯하지 않은가. 능청스런 유머 속에 날카로운 풍자가 빛난다. 철학·과학·음악·미술 등 다방면에 걸친 지식, 영화·문학·시사 등 오만 분야에서 패러디한 우디 앨런의 재치가 맛깔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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