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우측통행만 하면 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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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우리는 대개 후임자 ‘왕’의 임기가 시작되고 나서 전임자(또는 가족)의 ‘목’을 베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식 번제(燔祭)의 전통이 그저 악순환의 되풀이에 그쳤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십 년간 번제를 거듭 치르면서 ‘특권·반칙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서서히 구현돼 왔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말을 너무 번지르르하게 내세운 탓에 미운털이 더 박혔을 뿐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동안 잊고 있어서 그렇지 달라진 게 참 많다. 나는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 시청 앞 광장의 횡단보도를 이용할 때마다 감탄한다. 수십 년간 으레 지하도로 다녀야 했던 길이다. 수없이 다니면서도 차량 소통을 위해 지상에 건널목을 만들면 안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요즘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웬만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있다. ‘복마전’이던 서울시가 청렴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공무원 사회도 맑아졌다. 아직 버들치·쉬리가 헤엄치는 1급수가 되지 못했을 뿐이지 2, 3급수 수준에는 올랐다고 본다.

하지만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공공 장소에서의 행동이다. 반칙·특권이 서서히 줄면서 소수만 이용하던 공간들이 일반 국민에게 많이 반환됐다. 공유지(共有地)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그런 공간을 우리는 서로 배려하며 조화롭게 쓰고 있을까. 나는 자신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동료가 털어놓았다. “아이를 안고 건물에 들어서는데, 앞에서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이 뒤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바람에 하마터면 아이가 다칠 뻔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사람에게 거의 적개심까지 느꼈다고 했다.

사회학자 장원호 교수(서울시립대)도 비슷한 경험을 했나 보다. 9년간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우리나라의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새치기 문제에 부닥쳤다고 한다. 인기있는 놀이기구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줄을 섰다가 순서가 되면 우르르 몰려들어 기구에 탄다. 새치기인지 아닌지 한국에선 룰이 없다. 그러나 미국 놀이공원에선 엄연한 새치기로 명문화해 제재한다. 장 교수는 “한국 사회가 극복할 문제는 규정이 애매모호하고, 규정이 있어도 엄격히 적용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임의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대한민국은 도덕적인가』·동아시아).

생물학자 개릿 하딘은 개인의 영리하고 합리적인 행동이 모두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상황을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공공 장소는 공유지 비극의 실험장이나 마찬가지다. 길거리를 다녀보라. 아이부터 청소년·어른까지 남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것쯤엔 개의치도 않는다. 목소리는 왜 그리도 큰가. 결국에는 모두가 불편해지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이건 문화 차이가 아니다. 민도(民度)의 차이, 수준 차이다.

1921년부터 88년간 지켜오던 보행자 좌측통행 규칙이 내년부터는 우측통행으로 바뀐다고 한다. 교통사고 날 위험이 줄고, 오른손에 든 물건끼리 부딪칠 염려도 없다는 것이다. 보행자 간 충돌 횟수도 7~24% 감소할 것이라고 국토해양부는 예측했다. 그러나 우측통행으로만 바뀌면 무슨 소용 있나. 남을 배려 안 하고 저마다 ‘합리적’으로 휘젓고 다니는데….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