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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 ‘건재고택’도 남의 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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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고택이 보름 전 채권은행 사주의 소유로 명의가 넘어갔다. 예안 이씨 문중에서는 아산시가 매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냉담하다. 조영회 기자

건재고택도 남의 손에 넘어 갔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고택 터 경매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지역의 국가유적이 타인에게 넘어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산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에 있는 건재고택은 외암(巍巖) 이간(李柬) 선생의 출생 가옥이 있던 곳으로 국가로부터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예안 이씨 문중 관계자 등에 따르면 건재고택은 최근까지 후손인 고 이준경(전 외암리민속보존회 회장)씨가 아들 명의로 소유해 관리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을 받아 진행한 사업이 여의치 않게 된 이씨가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 이씨의 아들이 집을 담보로 아버지에게 수십억 원을 빌려 준 것으로 알려진 금융기관 사주에게 건재고택 명의를 이전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예안 이씨 문중 관계자는 “후손이 관리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문중에 건재고택을 매입할 만한 사람이 없다. 시가 나서 매입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잘 관리만 해준다면 후손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문중으로부터 매입 요구를 들어 본 적도 없고 설사 요구가 있었다 해도 엄연한 사유재산을 매입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 역시 “채권 금융기관 사주와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소 잘 아는 사이로 단순히 채권채무 관계나 자산 가치 때문에 명의를 이전해 간 것은 아니다”며 문중의 뜻과는 다른 입장을 밝혔다.

한편 3월 30일 현충사 내 문화재로 지정된 이 충무공 고택 용지 3필지와 문화재 보호구역 내 임야·농지 4필지 등 9만8000여㎡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지만 유찰됐다. 2차 경매는 5월 4일로, 3차는 6월 8일, 4차는 7월 13일로 예정돼 있다.

경매가 진행된 토지는 이 충무공 15대 후손 종부(宗婦) 최모씨 사유지며, 경매는 채권자 김모(70)씨가 신청했고 청구금액은 7억원, 최저 매각가는 약 19억원이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종회는 경매로 나온 토지 등을 종회가 매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순신 고택은 종부인 최씨가 8년 전 남편이 숨진 뒤 종가재산을 담보로 얻은 수십억 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경매에 넘어갔다.

장찬우 기자

◆건재고택= 1998년 1월 5일 중요민속자료 제233호로 지정됐다. 현재의 건물은 고 이준경의 증조부 건재(建齋) 이상익(李相翼: 1848∼1897)이 고종 6년(1869)에 지었다. 이 터에서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 외암 이간(1677∼1727)이 태어났다. 보통 전통가옥과는 달리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명당수가 마당을 거쳐 연못에 흐르게 하는 등 최대한 자연경관을 살린 정원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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