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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에 설 대목 실종…주머니 비어 귀향 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회사원 朴모 (41.서울노원구상계동) 씨는 회사의 경영난으로 올들어 월급이 30%가량 깎인데다 기대했던 설 상여금도 지급되지 않자 이번 설에는 아예 귀성을 포기했다.

朴씨는 "고향에 다녀오려면 부모님 용돈을 포함해 최소한 70만원 이상 드는데 올해는 도저히 여유가 없어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

崔모 (37.회사원.서울서대문구홍제동) 씨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먼저 전화를 걸어 "경제사정도 어려운데 올해는 내려오지 말라" 고 해 용돈만 보내드리기로 했다.

IMF 한파로 민족 양대 명절의 하나인 설 분위기마저 꽁꽁 얼어붙었다.

서민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시장.백화점 등의 '설 경기' 가 크게 위축되고 귀성인파도 예년에 비해 크게 줄 전망이다.

예년 같으면 설 연휴를 앞두고 각종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발디딜 틈도 없을 요즘 서울 남대문.동대문시장과 백화점 등에는 손님의 발길이 한산하다.

남대문시장에서 모피점을 운영하는 박재경 (朴載京.37) 씨는 "24시간 문을 열고 있지만 선물을 사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며 "지난해에 비해 손님이 3분의1 이하로 크게 줄어 설대목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 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7일까지 정기 바겐세일을 하고 있는 서울 롯데.신세계백화점 등도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이 20%나 줄었고, 특히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하던 상품권 판매가 급감한 상태다.

지난해 설 대목에 과일.갈비 등 95억여원어치의 선물세트를 팔았던 롯데백화점은 목표를 아예 65억원으로 낮춰 잡았지만 실제 매출액은 크게 못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백화점 김태화 (金泰和) 과장은 "올해는 고객들의 가계형편을 고려해 10만원 미만의 중저가 상품위주로 선물세트를 준비했는데도 주문이 30% 이상 줄어들었다.

특히 위스키 등 수입상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고 말했다.

귀성표 예매창구의 장사진도 옛날 풍경. 귀성객 특별수송을 위해 16일부터 시외버스 좌석표 예매를 시작한 서울중랑구 상봉시외버스터미널의 경우 지난해엔 속초방면 1천2백여장의 좌석표가 예매 시작 3시간여만에 매진됐지만 올해는 첫날 겨우 82장만 팔리는데 그쳤다.

서울서초구 남부터미널의 경우도 경상.전라도 방면 귀성버스표 5만9천여장을 준비했지만 첫날 고작 4천여장만 팔렸다.

정제원.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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