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행,미국 주도 한국 외채협상에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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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의 외채연장 협상이 미국주도로 이뤄지고 있는데 대해 유럽.홍콩 등의 금융계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한국에 미국보다 많은 돈을 빌려준 독일 금융기관들이 미국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을 내놓고 협상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최근 한국은행 및 외무부가 해외사무소.공관을 통해 해외금융계 반응을 수집한 결과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 16일 도이체 방크를 비롯, 독일 은행들은 한국에 빌려준 단기자금 (1백10억달러 규모) 을 한국정부보증 중장기채나 90억달러 규모 국채로 전환하려는 미국 금융기관들의 방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독일 은행 관계자들은 국채발행이나 중장기채 전환 방식이 한국에 너무 무거운 이자부담을 지우게 돼 결국 한국의 경제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측 방안 대신 한국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끝내고 활력을 되찾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단기외채의 만기를 연장해주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국.프랑스에서도 외채연장을 위한 한국정부의 협상방식에 상당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독일이 한국에 빌려준 돈의 규모로 따져 제2위 채권국이고 프랑스가 제3위 채권국인데도 한국은 미국은행들과만 상대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의견은 최근 유럽을 방문한 이경식 (李經植) 한국은행총재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럽연합 (EU) 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영국은 주한 영국대사관을 통해 유럽금융계의 의견을 정부측에 적극 개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우선 스티브 브라운 주한 영국대사가 오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유럽국가들의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다. 홍콩의 금융전문가들도 "한국의 국채발행금리가 전세계적인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정되지 않고 미국계 은행들의 주도로 정해진다면 공정성을 보장받기 어려우며 금리담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은 미국중심의 채권은행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의 주요 채권 발행.인수에 참여했던 모든 기관들을 참여시켜 발행조건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금융계는 미국 상업금융기관들과의 단기외채 전환협상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말고 일본 및 유럽계 은행들과의 긴밀한 개별접촉을 통해 우리에게 유리한 외채 전환 방안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윤호.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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