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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보았네, 박경리 문학 잉태한 청춘의 흔적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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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원주·하동> 글·사진=손민호 기자

경남 통영.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미항(美港)이다. 하여 이곳엔 아무 때나 와도 좋다. 통영항 내다보이는 허름한 ‘닷지집’에서 얼큰하게 취해도 좋고, 이른 새벽 배 타고 나가 해종일 소매물도 등대 바라보고 와도 좋다. ‘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고 노래했던 청마 유치환(1908~67)을 흉내내 중앙동 우체국에 들어가 그리운 이에게 편지 한 통 부쳐도 그만이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박경리에게 바치는 여행이다. 통영에 들자마자 미륵도에 있는 묘소를 향했다. 미륵산과 장군봉 사이의 산기슭, 한산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구릉에 당신은 있었다. 무릎보다 낮은 묘비 하나 서 있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는 묘소는 너무나 박경리다웠다.

폐암 선고를 받고서도 담배를 끊지 않았던 당신이 떠올라 향 대신 담배에 불을 붙여 묘석 위에 내려놨다. 통영시는 묘소 일대 4460㎡를 ‘박경리공원’이라 이름 짓고 주위를 정비 중이다. 당신의 시와 산문에서 몇 구절을 따와 문학비도 세웠고 꽃과 나무도 심어놨다. 내년엔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통영시는 다음 달 4일 오후 7시 시내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추모의 밤 행사를 치르고, 이튿날 오전 10시 묘소에서 추모제를 연다.

한국전쟁 통에 남편을 잃은 박경리는 55년 어린 딸(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의 손을 이끌고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2004년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렇게 내버렸던 고향에 묻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내막을 아는 이는 드물다. 하나 고향은 어쩔 도리 없이 고향이었나 보다.

시내로 들어왔다. 해저 터널 입구에 작은 표석이 있다. 원고지를 그려 넣은 표석 안에 ‘판데’란 제목의 박경리 육필 원고가 새겨져 있다. 통영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삼은 장편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판데’는 땅을 판 곳이란 뜻의 통영 사투리다. 매립지란 얘기다. 소녀 박경리가 뛰어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엔 박경리와 인연이 있는 지역 6곳에 표석이 들어서 있다. 중앙동 서문고개 위엔 생가가 있고, 그 아래엔 당신이 다녔던 초등학교도 있다. 서문고개 아래 항남동 5거리에서 박경리는 재봉틀 한 대 들여놓고 수예점을 해 생계를 이었다. 그 긴 사연을 통영은 무심히 담아내고 있었다.

여행정보=통영은 예술의 고장이다.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김용익 등 문학가와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이 있다. 시내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통영시는 이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통영 역사문화기행 안내 책자를 제작·배포하고 있다. 통영시 문화예술과 055-650-4514, 통영 예총 055-645-9975. 지난달 미륵도엔 지중해풍의 럭셔리 리조트 ES리조트 통영이 문을 열었다. 02-508-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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