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연명치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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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늘 아침도
말 없는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나마 의식이 있을 때
늘 나에게 되뇌던 말이다.

"제발, 퇴원만 시켜주소.
어차피 죽을 날 받아놓은 목숨.
마누라와 자식 먹고 살
집은 남겨놔야 되지 않겄소."

지친 표정이 역력한 그의 아내.
어쩌면 그녀에겐
모질게도 삶의 동아줄을
놓지 않는 남편보다
퇴원을 허락지 않는
내가 더 미운 존재일 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도
그는 대답을 재촉한다.

내가 당신의 퇴원을
허락하는 순간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지고 가야 할
의사의 숙명.

내 변명이 탐탁잖은 듯
다시 그의 눈이 건네는 말.

"말 한마디 못하고
몸도 맘대로 못 움직이는데
약 먹고, 호흡기 꽂아가며
숨만 쉬면 사는 겐가."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
섣불리 환자와 보호자를
안타까이 여겨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제발, 저를 이해해주십시오.

병실 문을 닫는 내 귓가에
맴도는 그의 목소리.

"이제 이승과 작별하게 해주소.
가족들에게 더 이상
죄 짓지 않게 해주소."

*최근 대법원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던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들에게 실형을 선고하자 의료계에선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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