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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마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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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002년 8월의 어느 날 이라크 북부 지역. 랜드 크루저.체로키 지프.트럭으로 구성된 한 무리 대열이 나타났다. 특수작전을 위해 쿠르드 지역으로 들어가는 미 중앙정보국(CIA) 현장 요원 14명이 탄 차량이었다.

팀(가명)이란 이름의 조장이 운전하는 랜드 크루저엔 830kg쯤 되는 별난 짐이 실려 있었다. 검은 상자에 담긴 100달러짜리 지폐 더미였다. 100달러 지폐만으로 100만달러 뭉치를 만들면 무게가 약 26kg. 실린 돈이 3200만달러(384억원)였으니 대단한 짐이었던 셈이다. 모두 이라크인 포섭 자금이었다.

첫번째 대상은 이슬람 성직자와 그의 두 아들이었다. 이들에겐 월 13만5000달러의 활동비가 지급됐다. 금액은 점점 늘어 전쟁 직전엔 월 1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그해 2월 CIA가 포섭 작전용으로 확보한 1억8900만달러의 예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CIA가 늘 이처럼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CIA 금고엔 찬바람이 불었다. 현장 요원에게 필요한 통신 장비 구입비 2만달러도 없어 조지 테닛 당시 CIA 국장이 예산국을 몸소 찾아 하소연했어야 했다.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던 현지인 30명에게 지급한 활동비도 고작 월 1만달러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정보비에 돈을 펑펑 쓴 건 이라크 전쟁이란 특수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걸 초강력 국가 유지를 위한 미국의 패권적 노력이라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 됐던 강한 국가는 정보에 대한 투자, 즉 정보 마인드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지만 김선일씨 피살 사태로 드러난 한국 정보 마인드의 현주소와 미국의 그것엔 큰 차이가 있다. 김씨 피랍 사실을 제때 알지 못했다는 것, 이라크 납치 단체와 접촉할 변변한 채널도 없었다는 것 등등 모두 부끄러운 수준이다. 3700명이 파병되는 나라에 대사관 직원이 10명이 안된다는 것도 정보 세계에서 볼 땐 한심한 일이다.

5일 시작될 김선일씨 국정감사는 그런 의미에서 왜 우리의 정보 마인드가 이처럼 취약한지를 따지고 개선하는 데 집중되기를 기대한다.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만 제대로 고친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