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전향 장기수 북송 권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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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국내에 거주하는 장기수의 북송(北送)을 정부에 권고할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의문사위는 전향 장기수들이 유신 시절 교도소 내의 폭력에 의해 강제로 전향서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장기수의 전향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준법서약제와 전향제도가 폐지됐다는 점도 강조한다.

의문사위는 지난 1년 동안의 활동 내용을 이달 말까지 대통령에게 보고하는데 전향자 북송 문제를 여러 가지 권고사항 가운데 포함시킬 방침이다. 대통령은 권고 내용을 검토한 뒤 조치 결과를 의문사위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권고가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의문사위의 방침에 대해 인권단체.장기수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통일연대 한충목 집행위원장은 "당시 정권이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전향공작을 저지른 것이 확인된 만큼 전향 장기수에 대한 판단도 다시 해야 한다"며 "인도적 차원에서 장기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전향 장기수 김영식(71)씨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가서 아들.딸 얼굴 한 번만 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1962년 간첩 혐의로 체포돼 26년간 복역했다.

그러나 탈북자 단체와 일부 시민단체는 남측만의 일방적 송환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국권수호국민대회협의회는 "의문사위의 행동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헌법 수호 및 국가 보위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은"우리는 납북된 가족의 생사확인도 안 되는 마당에 장기수들만 계속 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우리가 인권을 고려해 관용의 자세를 보이면 북에서도 그렇게 화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휴전 이후 납북된 인사 가운데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은 국민은 486명, 국군 포로 가운데 500여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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