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법 사금융 피해 막자면 서민에 돈줄 열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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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경제위기로 불법 사금융의 피해를 보는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직장에서 떨려나거나 가게 문을 닫은 뒤 생계가 막막해진 신빈곤층은 은행이나 제2 금융권의 문을 두드려봤자 퇴짜를 맞기 일쑤다. 그러니 별수 없이 대부업체를 찾고, 거기서도 거절당하면 연리 100% 이상인 불법 사금융 업체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대부업체의 경우 제도권 금융기관보단 문턱이 낮고 살벌한 빚 독촉을 하지 않아 그나마 서민들이 기댈 만했다. 그러나 최근 자금난으로 이들이 대출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불법 사금융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상반기 실시된 정부의 첫 실태조사 결과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는 국민이 3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 이후 경기가 급속히 악화된 것을 고려하면 현재는 이용자 수가 이보다 훨씬 늘었을 것이다. 고금리나 불법 추심으로 금융감독원의 사금융피해상담센터에 접수된 신고 건수가 지난해 4075건으로 전년보다 19% 이상 늘어난 것만 봐도 그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가 고리 사채를 썼던 대학생 딸을 살해하고 자살한 최근의 비극적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정부가 28일 국무회의에서 불법 사금융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내놨다. 불법 사금융에 대한 단속 강화와 금융권의 대출 활성화가 골자다. 맞는 방향이다. 서민들에게 다른 돈줄을 열어주지 않고 무작정 단속만 해선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정부가 시킨다고 실제로 금융기관들이 서민 대출에 나설까 하는 점이다. 새마을금고·신협이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 또는 보유재산 담보를 조건으로 대출하는 방안은 그래도 가망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시중 은행들더러 1조4000억원 규모로 저소득층 24만 명에게 신용대출을 해주라고 한 건 실현 가능성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은행권이 이미 지난달 중순 똑같은 대책을 발표했지만 지금껏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제 코가 석 자인 은행들이 손실 위험을 무릅쓰고 신용이 낮은 서민들에게 무담보 무보증 대출을 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방법이 전혀 없진 않다. 2007년부터 저신용자 대출을 틈새상품으로 활성화한 전북은행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은행 일반 대출보단 높고 대부업체의 절반 수준인 금리로 빌려 준다고 한다. 이번 대책을 계기로 금융권이 저소득층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