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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휘발유·교통세 더 올려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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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름값이 뛰었다.

교통세가 오르고 환율이 뛰었다.

휘발유값이 ℓ당 1천1백35원. 환율인상의 일부만 반영된 것이므로 또 오를 것이다.

불과 두어달 전만 해도 ℓ당 8백원대였으니 IMF 관리체제의 쓰라린 맛을 기름값에서 실감할 수 있다.

덕분에 거리의 자동차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힘들겠지만 기름값은 더 올려야 한다.

우리는 고유가시대로 가야 한다.

유류소비에서부터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저 (低) 유가시대의 소비행태를 누려왔다.

80년대초 휘발유값은 요즘 가격으로 ℓ당 1천6백원이었다.

그러나 국제 원유가가 안정되고 우리 경제가 피어나면서 국내 유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싼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만큼 소비가 늘어 날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후반 우리나라 유류소비는 연평균 15% 이상씩 늘어났고, 특히 휘발유 소비는 매년 30% 가까이 늘어났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높지 않았을까. 우리의 80년대를 미국의 대공황 직전의 호황기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미국은 호황을 맞아 대중소비시대로 들어간다.

무엇보다 자동차 보급이 포드T형의 등장으로 폭발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에 묘사된, 약간은 허황된 것 같은 거품과 물질주의 분위기는 그러나 대공황으로 끝나게 된다.

80년대 후반 이후 우리의 자동차 보급률은 연평균 17%에 이르렀다.

소득의 증가와 자동차가 주는 기동성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신혼부부들이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구입하고, 담배를 사러 슈퍼마켓엘 가도 자동차를 타고, 명절이나 휴가 때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도 용감히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평균 주행거리는 연평균 2만5천㎞인데 일본은 1만1천㎞고 미국은 1만8천㎞다.

자동차는 응당 관광.레저 등 소비문화를 촉진시켰다.

서울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야타족이 피어나고, 세계 두번째의 양주 수입국이 되고, 부동산값이 뛰었다.

이것이 IMF 전야의 우리 모습이다.

자동차 과소비는 자동차의 크기에도 나타난다.

미국 승용차의 평균 바닥면적은 8.49㎡다.

다음이 한국 승용차로 7.14㎡다.

이에 비해 독일 승용차가 7.0㎡, 일본 승용차가 6.89㎡, 프랑스 승용차가 6.6㎡다.

북해에서 석유가 쏟아지는 영국도 자동차의 23%가 1천㏄ 이하의 소형차인데 우리의 경차 보급률은 4.5%에 지나지 않는다.

기름값이 싸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고 (高) 유가정책으로 가야 한다.

오죽하면 IMF도 교통세의 인상을 조건으로 내세웠겠는가.

분수 모르고 귀한 기름을 낭비해 왔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기름값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싸다.

두어달 전까지 ℓ당 8백원대 수준이었는데, 영국이 1천90원, 프랑스가 1천50원 등이다.

지금 도로마다, 거리마다 자동차가 넘치고 있다.

자동차 이용의 과소비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름값이 싸기 때문이다.

휘발유값은 물가지수 계산의 가중치가 높기 때문에 항상 물가당국의 고삐에 눌려 지냈다.

휘발유는 승용차만 사용한다.

휘발유값을 올리면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만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작다.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승용차 중심 구조를 대중교통 중심으로 전환하려면 무엇보다 고유가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주행세가 오랫동안 거론됐다.

주행세나 교통세는 같은 개념이다.

자동차 수요의 탄력성을 고려해 충분한 수준까지 대폭 휘발유값을 인상하는 것이 옳다.

금번 ℓ당 41원의 교통세 인상은 IMF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산업이나 대중교통 보호차원에서 경유값은 현 수준을 유지하자. 그러나 경유를 이용하는 지프의 생산은 중지해야 한다.

교통세는 교통특별회계의 재원이다.

따라서 교통세 인상은 교통수요의 올바른 소비행태를 유도할 뿐 아니라 사회간접자본의 투자재원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건영 <교통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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