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리가 보는 21세기 의료]2.인공장기 개발 어디까지 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건각의 할아버지가 6백만불의 사나이처럼 산을 오른다.

힘찬 심장박동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광고멘트. "탱크처럼 튼튼한 심장을 원하십니까. 우리 회사 제품을 선택하는 순간 당신은 바람처럼 달릴 수 있습니다."

2015년 가을 초입. 韓박사 (45) 는 벽걸이 TV에서 나오는 요란한 인공심장 광고를 보면서 3년 전 구입한 심장을 바꿀까하고 생각했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 인공심장을 단 몇 사람이 철인경기와 산악훈련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그가 참가할 경기는 6개월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세계의 인공장기 이식인을 위한 올림픽에서 그는 5천m 계주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장기이식인 올림픽은 자동차경주처럼 장기제작사들의 각축장이 될 판이었다.

보다 뛰어난 기능의 '부품' 개발은 엄청난 부를 약속했다.

건당 10만불에 달하는 인공심장수술로 제작사들은 년 1백억불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장기 하나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죽어야만 했던 지난날 인간의 삶은 얼마나 억울한 것이었을까. 20세기를 마감하자 인류는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무뇌아 생산 (?) 을 허용했다.

물론 인공장기가 개발되기 전까지의 조건부 허가였다.

무뇌아는 성숙한 난자의 핵을 제거한 자리에 건강한 DNA를 삽입하고, 인체조직이 분화될 때 뇌로 성장할 원시세포를 제거하면 그뿐이었다.

마치 마네킹을 찍어내듯 대뇌피질이 없는 인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세계 네트워크를 자랑한 중앙장기이식센터도 해체됐다.

생명체를 단순한 조립품으로 인식하는 기계론적 생명관이 지배했다.

韓박사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열살 때인 1980년 수술을 받았다.

2002년엔 무뇌아의 심장을 통째로 이식받고, 2012년엔 생체보다 기능이 뛰어난 인공물로 무뇌아의 심장을 대체했다.

인공심장을 단 과학자로서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 그는 2년 전엔 무릎을 바꿔달았다.

다소 비싸긴 했지만 인공무릎은 강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선수용이었다.

죽은 사람의 관절연골이나 뼈를 이식하는 시술은 이미 지난 90년대 보편화됐었다.

이후 연골세포나 뼈를 만들어내는 골아세포를 이식, 몸안에서 배양이 되도록 한 시절이 있었다.

최근에는 인공칼슘과 같은 특수 소재를 이용, 생체보다 튼튼한 뼈와 연골이 개발되어 블록처럼 자유자재로 골.관절을 끼워 맞추게 됐다.

연골조직을 이식, 인간의 귀를 단 쥐가 선보인 것은 지난 97년의 일이었다.

인공방광.간장.신경.혈액 등 생체보철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연구성과들이 속속 보고됐다.

혈관세포로부터 배양한 심장판막은 종래 사용되던 돼지판막을 몰아냈고, 포경수술을 하고 난 뒤 남은 피부는 엽서크기로 대량 배양.생산되어 화상이나 피부괴사환자나, 또 좀더 아름답게 가공돼 노인들의 얼굴을 매끈하게 만들어주는 미용피부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박사의 아내는 단 하루도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당뇨환자.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환자들은 합병증으로 평균수명을 누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아내는 바이오인공체장을 이식, 거리낌없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정도로 건강하다.

인공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내 랑겔한스섬세포를 고분자막에 싸 체내에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이 막은 거부반응의 원인인 항체를 차단하는 대신 인슐린은 외부로 공급하는 특수 면역격리막이다.

함께 계주에 참가하는 동료 선수 중에는 알콜성 간경변으로 간장을 이식한 사람, 휴대용 인공신장을 장착한 사람도 있다.

간이식은 간경변이 생기기 전 건강한 간세포를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배양해 사용하는 것으로 이같은 방법은 이미 지난 세기말 쥐에서 성공한 바 있다.

세월은 흘러 6개월 뒤. 제1회 인공장기이식인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막대한 재력을 가진 스폰서들에 힘입어 화려하게 개막됐다.

이 올림픽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오로지 자신의 몸에 의존하던 지난 세기의 불편과 불행을 마감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고종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