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당선자의 '변신'

변신 (變身) 은 좋지 않은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 좋은 의미로도 자주 쓰이고, 여기서 말하는 당선자의 변신은 일종의 '화려한 변신' 이다.

대통령은 누구에게서 표를 얼마를 얻었든 일단 당선되고나면 '모든 국민의 대통령 (President of all the people)' 이 돼야 한다.

자기에게 표를 찍지 않은 사람들까지 감싸안으며 '모든 국민의 대통령' 을 향한 자기 적응과정을 의미한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 살아 있는 교훈이다.

클린턴은 한동안 '43% 대통령' 으로 통했다.

43%의 지지로 92년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취임 첫 2년이 지나도록 여론의 지지는 50%를 밑돌았다.

자기에게 표를 찍지 않은 57% 유권자들을 감싸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료개혁 등 각종 개혁의 입안과 정책세일 과정에서 감싸안기는커녕 이들을 '적 (敵)' 으로 돌렸다.

의사와 병원, 의료산업을 적대시한 의료개혁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클린턴은 당선후 선거참모들을 그대로 핵심참모로 포진했다.

이들은 선거운동하듯 국정을 운영해 나갔다.

'상황실' 을 만들고 지지하는 쪽은 '아군' , 반대세력은 '적군' 식으로 편을 갈랐다.

클린턴의 당선은 민주당에 12년만의 집권이었다.

민주당쪽 두뇌집단이 즐비하지만 공화당의 장기집권으로 관변에서 최신의 경험을 쌓은 국정운영 경력자들이 많지 않았다.

머리는 좋지만 의욕을 앞세운 탁상공론가들이 클린턴 1기 정부의 주류였다.

그런 그가 96년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고 지금은 80%를 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변신' 덕분이었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자 클린턴은 공화당쪽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작은 정부' 와 '균형예산' 등 공화당의 정책노선을 껴안았다.

극빈자에 대한 무한정 생계보조비 지원을 중단하고 그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사회보장법의 후퇴도 불사했다.

주요정책에서 대타협이었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 은 빛 좋은 구호가 아니다.

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의 기본 덕목이자 전략으로 중시했고 트루먼은 신의 섭리에 따른 고결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케네디는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국민에 '자라나는 세대' 까지 포함시켰다.

보수와 진보, 노와 사, 대기업과 중소기업, 생산자와 소비자 등 이해가 대립되는 세력들간에 '창조적 파트너십' 을 설정하는 능력이 곧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했다.

김대중 (金大中) 당선자는 40% 남짓한 지지로 당선됐다.

그에게 표를 찍지 않은 60%는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고 한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 이 되기 위해 이들을 감싸안는 변신이 요구된다.

사회의 주류 (mainstream) 를 딛고 각 분야에서 창조적 파트너십을 다져야 한다.

타협이 곧 나약은 아니다.

50년만의 정권교체로 국가 경영에 필요한 인재들을 재야쪽에서 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과감한 발탁이 따라야 한다.

국정운영에서 선거운동식 투쟁방식은 금물이다.

18일 국민과의 첫 TV대화는 TV후보 토론과 달라야 한다.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목표는 어디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국민들에게 명쾌히 제시하고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

대변인의 '입' 들도 달라져야 한다.

왕년의 대변인 대신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전문영역으로 각광받고, 표현방식과 곡해를 잡아주는 '말의 의사 (spin doctor)' 까지 초빙되는 세상이다.

말은 부드럽되 행동은 단호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 이 탄생하는 데는 큰 희생이 따른다.

열성적 지지자들은 자기가 찍은 후보가 당선된 것으로 만족하고 어떤 반대급부나 보상을 기대해선 안된다.

당선자는 변신을 넘어 표 찍은 사람들을 때로는 배신하고 배반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그에게 표를 찍지 않은 사람들도 일단 그가 당선된 이상 당선자와 창조적 협력관계 설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 나라 대통령의 수준은 곧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라 하지 않는가.

변상근<편집국장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