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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요리사 브랜드로, 문화·비즈니스 함께 수출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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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7성호텔 버즈 알 아랍에서 일해온 한국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이 서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식당을 연다. 호텔에 붙여지는 일곱 개의 별 대신 요리사를 별, 즉 스타로 삼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의 구상을 중앙SUNDAY가 들어봤다.


“최근 청담동에서 네 명이 식사를 했는데, 100만원이 나왔어요. 깜짝 놀랐죠. 저는 술은 안 마셔요. 물 두 병 값을 빼면 1인당 5코스에 20만원이더군요. 뭔가 과부하가 걸려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이런 말 하면 기분 나빠할 분들도 있겠지만, 서울 일부 지역의 고가 음식 시장은 거품이 너무 심해요. 세계적으로 이름난 요리사들이 뉴욕이나 파리에서 하는 미슐랭 별 3개짜리 식당보다도 비싸요. 국내 음식시장을 10년 전과 비교하면 인테리어는 많이 발전했어요. 음식 자체는 그렇지 않아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서울에서 레스토랑을 준비 중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38·사진)의 말이다. 지난해 이맘때, 그는 두바이의 최고급호텔 버즈 알 아랍에 수석총괄주방장으로 부임하면서 국내에서도 유명 인사가 됐다. 최고급 호텔에 공식적으로 붙는 별 다섯 개를 넘어 별 일곱 개를 자부하는 곳, 1박에 최저 200만원이 넘는 이 호텔에서 그는 전 세계 최고급 손님을 상대해 왔다. 이런 그가 “비싸야만 고급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좀 뜻밖이다. 인터뷰는 두 차례 만남을 통해 진행됐다. 그가 2주간의 일정으로 두바이로 떠나기 직전, 그리고 서울에 돌아온 직후인 23일 만났다.

사실 뜻밖이라면, 그가 버즈 알 아랍에 사의를 표하고 한국행을 결심한 것이 먼저다. “의아하게, 아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도 많은 것 같아요. 한국인으로 그만한 자리까지 가기도 힘들지 않으냐, 아시아에 음식으로 유명한 다른 도시가 많지 않으냐 등등. 미슐랭 가이드가 지난해 도쿄판을 냈는데, 그 다음은 상하이라죠. 서울은 리스트에 없어요. 제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죠.”

역으로 이런 점이 그의 한국행을 부추기기도 했다. “두바이에서 외국 스타 요리사들을 많이 만났죠.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한테 하는 말이, 왜 한국에 안 가느냐는 거예요. 에드워드 권을 통해 한국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너 정도의 경력이면 그걸 누구보다도 빨리 할 수 있다, 이런 얘기죠. 외국에서 인정받는 요리사를 국내에서 새로 키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그는 버즈 알 아랍을 두고 “고액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버린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쯤에서 짐작하는 대로, 그의 구상은 소박한 식당 하나가 아니다. 올해 안에 세 곳의 식당을 열어 기반을 다진 뒤, 해외에도 식당을 열 생각이다. 8월쯤부터 평창동에 나란히 들어설 ‘에드워드 권 비스트로’와 ‘에드워드 권’이 그 시작이다. 강남에도 에드워드의 약칭을 붙인 ‘에디스 카페’를 준비 중이다. 가격대를 비교하면 세 곳의 서로 다른 특징이 뚜렷하다. “비스트로는 점심 3코스에 2만5000원~2만9000원을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해 제가 책을 펴낸 뒤로 초등학생인 딸이, 혹은 아들이 에드워드 권 같은 요리사가 되고 싶어한다는 부모님들 메일을 받곤 해요. 에드워드 권이 식당을 연다는데 함께 오겠다고도 하고요. 그렇게 지금 요리를 하는, 요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격으로 이런 요리의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녁은 4만~5만원대고요.”

‘에드워드 권’은 이와는 다른 차원이다. 파인 다이닝, 즉 최고급 정찬식당이다. 운영도 회원제로 할 예정이다. 9코스 12만원, 12코스 15만원 정도로 구상 중이다. ‘에디스 카페’는 또 다르다. 한 끼 식사가 1만원대다. 세 곳의 식당을 통해 명품과 대중상품을 고루 출시하려는 셈이다. 각각의 메뉴는 식당마다 매월 또는 매주 정기적으로 새로 바꿀 예정이다.

“그렇게 해서 돈 벌겠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건 셰프의 능력에 달려 있죠. 또 저는 돈만 보고 살고 싶지는 않아요. 외람되지만, 명예를 좇으면 돈은 따라온다고 봐요.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한국 음식문화에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사람으로 남는다면 기분 좋은 일이죠.”

그가 말하는 명예의 내용을 달리 옮기면, 요리계에 스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실력을 인정받은 요리사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다양한 컨셉트의 식당을 주요 도시로 넓혀가고, 방송·출판 등을 통해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해외에서는 흔한 일이 됐다. 미국 LA에서 시작해 유럽 등으로 식당 ‘노부’를 펼쳐간 마쓰히사 노부유키, 요리 관련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국내 시청자에게도 낯익은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도 그런 예다.

지금 에드워드 권의 스타 파워는 적어도 요리사를 꿈꾸는 이들 사이에는 폭발적이다. 홈페이지(www.edwardkwon.com)에는 정식 채용 공고를 내기 전부터 함께 일할 기회를 달라는 사연이 수백 통 올라왔다. 제빵학원에 다닌다는 고교생에서 해외 유학파 경력자까지 다양하다. 특히 나어린 학생들의 관심이 너무 뜨거워 현재 홈페이지에는 ‘고교생은 채용할 수 없다’고, 지원조건을 ‘19세 이상’으로 밝혀 둔 상태다. “e-메일은 훨씬 더 많아요. 40대 아버지가 보낸 내용을 보고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아들이 너무 요리를 좋아하는데 경기 불황으로 학원에 못 보낸다고….”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액 장학금으로 운영하는 기숙형 요리학교’를 자신의 최종적인 꿈으로 소개해 왔다. “제가 진학할 때만 해도 전국에 5곳이었던 조리학과가 지금은 200곳쯤에, 연간 졸업생이 3만 명이 넘어요. 너무 많아지니까 교수진이 충분하지 않죠. 조리과를 다니면서도 자격증을 따러 학원을 다니는 아이러니가 벌어져요. 조리과는 재료비도 많이 듭니다.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같은 데서 유학하려면 1년에 1억원쯤이 든다고 봐요. 그걸 대줄 수 있는 부모가 많지 않죠. 설사 있더라도, 그렇게 공부하고 돌아온 요리사들이 한국에 정착 못 하고 다시 해외로 가는 경우도 많죠.”

그가 외국인 요리사를 5명이나 데려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외국 셰프들이 와서 한국 직원들을 가르치고, 이렇게 길러낸 요리사를 우리가 외국에 여는 식당에 내보낼 수 있죠. 또 외국 셰프들도 한국문화나 식습관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이를 응용한 새로운 음식을 선보일 수 있겠죠. 그런 식당에 우리가 투자를 할 수도 있고요. 한국음식이 아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니까, 그들로서도 흥미로운 기회죠. 문화와 비즈니스를 동시에 수출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겁니다.”
그의 식당은 전공대로 양식이 기본이다. 물론 한국적 요소가 있을 터다. 국산 식재료를 지역적 특색을 살려서 쓰거나, 한식에서 영감을 얻은 새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뉴욕에 모모푸쿠(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요리사 데이비드 장의 퓨전식당)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갔다 온 사람들은 (엄밀한 의미의) 한국음식은 아니라는 말도 해요. 하지만 그런 식당이 있다는 자체가 한국음식의 저변을 넓혀주는 것이죠.”

그의 결코 작지 않은 꿈이 기대만큼 실현될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분명한 건 현재 엘리트 요리사로 보이는 그도 숱한 실패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그의 먼젓번 한국행도 한 예다. 묻기도 전에 그는 2004년 서울 W호텔에 부총주방장으로 왔던 일을 끄집어낸다. 당시 한국으로 돌아온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1년 만에 해외 호텔로 다시 옮겨갔다. “그때는 제가 너무 젊었고, 어렸죠. 지금 이런 게 외국에서 잘나가는 트렌드고 정석이라고 주입시키기에 급급했지,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작업을 못했어요. 이후 세 곳의 호텔에서 총주방장을 맡아 각양각색의 직원과 일하며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었죠. 이제는 후배들에게 제 비전을 전해줄 수 있다고 봐요.”

그는 “함께 일하는 직원의 사기와 신뢰도는 비즈니스를 이끄는 가장 큰 요소”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동안 한국적인 방법도 구사했다. “생일·결혼기념일에다 아이들 돌과 백일도 챙겼죠. 봉투에 돈을 넣어서 줬어요. 한국에서는 금반지를 주는 건데, 내가 바빠서 못 샀다고요. 이런 작은 일 하나하나가 저를 보는 눈을 바꿔줘요.”

두 차례의 만남 내내 그는 다변이었다. “요리사가 요리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어요. 말로만 들어도 듣는 사람 입에 침이 고여야 손님이 오기 시작하고, 세계화든 뭐든 할 수 있죠. 요리 자체가 오감을 만족시키는 문화입니다. 요리사도 종합예술인이고, 엔터테이너가 돼야죠.”

그의 말맛을 좀 보고 나니, 손맛이 더 궁금해진다. 손맛 대신 손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칼과 불을 쓰는 요리사의 손에 상처가 없을 리 없다. 그도 그랬다. 자잘한 상처 외에 왼손 가운뎃손가락의 밑동 마디가 유독 굵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선반에 올려놓은 칼이 떨어져서 관통한 자리예요. 신경이 잘려서 전신마취하고 여섯 시간 대수술을 받았었죠.” 그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의 요건을 물어봤다. 그의 답변은 앞으로 공개 모집할 주방의 말단급 직원을 염두에 두는 듯했다. “테크닉이나 지식도 상당히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요리를 정말 좋아하느냐예요. 높은 모자를 쓴 요리사가 겉으로 멋져 보일지 몰라도, 그 이면에서 하는 일은 막노동이에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정이 있어야죠.” 지금의 구상대로 진행된다면, 그는 내년까지 총 6곳의 식당을 열 생각이다. 이를 위한 전체 인력을 220명 규모로 보고 있다.

그는 한편으로 “요리사는 성취감을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고도 말했다. “요리를 먹는 손님의 표정만 봐도 알게 되죠. 음악이나 미술처럼 만들어서 관객과 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물론 음악이나 미술은 잘못 만들었다고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는 않죠. 그래서 요리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죠.”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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