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아시아 처방 효과있나]국내시각…현실 동떨어진 처리 흑자도산 양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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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방 확대.기업투명성 제고.시장경제원리 도입 등 IMF가 요구해온 각종 조건의 총론적 측면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현실을 무시한 것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문은 초긴축 정책과 부실금융기관 처리문제다.

긴축은 IMF가 긴급자금을 신청한 국가에 내리는 단골 처방이다.

재정을 줄이고, 고금리를 유지해야만 외국자본이 들어오고 환율이 안정된다는 논리다.

IMF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처방을 내렸다.

40%로 묶여 있는 법정 최고금리를 철폐토록 했고 총통화증가율 ( 기준) 도 9%로 묶을 것을 요구했다가 최근 재협상에서 13% 안팎으로 수정했다.

국내에서는 IMF가 제시한 9% 총통화증가율에 2.5% 경제성장은 애초에 앞뒤가 맞지 않는 전망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총통화증가율이 9%면 성장률은 마이너스 3%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총통화증가율이 15%는 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재협상을 통해 합의한 총통화증가율 13%의 경우에도 올 1분기에 7조원 안팎의 자금이 새로 공급될 뿐이다.

지난해 1분기는 20조원이 늘었다.

이에 따라 자금시장이 경색되고, 금리가 20%를 웃돌 경우 살아남을 기업이 거의 없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흑자를 내는 기업이 무더기 도산할 우려도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임창열 (林昌烈) 경제부총리도 "외환위기가 진정되는대로 금리를 내리기로 IMF와 협의하겠다" 고 밝혔다.

또 긴축에 이은 저성장으로 기업부도가 잇따르고 대량실업이 발생할 경우 경기가 회복되기는 커녕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부실 금융기관 처리도 우리의 현실을 무시한 처방이라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부실 종금사의 즉각 폐쇄를 요구함에 따라 자금난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실제로 상당수 종금사가 문을 닫을 경우 이들과 거래해온 기업들의 자금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관계자는 "태국이 56개 종금사를 폐쇄했다지만 태국의 종금사는 개인들을 상대로 주택자금 대출을 하는 영세 금융기관" 이라며 "기업에 수십조원을 조달하는 우리 종금사와는 개념이 다른데 IMF는 똑같은 처방을 내리고 있다" 고 말했다.

제일.서울은행의 경우 IMF는 주주들의 책임을 물어 기존 주식 전액을 소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은행들은 그동안 1인당 소유한도가 엄격히 제한돼 마땅히 책임질만한 주주도 없다는 특수성을 IMF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특히 외국인 소액투자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보호를 요구하면서 제일.서울은행의 소액투자자에게는 출자분 전액을 포기하라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위라는 비판이 강하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는 세계 11위의 무역대국" 이라며 "멕시코나 태국처럼 개발도상국식 처방을 일률적으로 내려서는 되레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고 지적했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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