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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 2기를 준비한다]2.성패는 투표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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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역일꾼들을 뽑는 2기 지방선거가 오는 5월7일 치러진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중앙정부로 볼 때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버금가는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지방자치제의 일천한 역사와 인식부족으로 민선행정이 제자리를 잡았다고 보기 어렵다.

'풀뿌리 민주주의' 는 올바른 투표행위에서 출발한다는 전제 아래 지방선거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본다.

지난해 9월 대전에서시의원.구청공무원.민간업자등이 연루된 주차장 비리사건이 터지자 대다수 시민들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 이라며 분개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대전시의회 황명진 (黃明珍.64) 의원은 시의회 산업건설분과위원장이던 96년12월 당시 신체장애인복지회 대전동구지회장 임인환 (林仁煥.45) 씨로부터 "동구 관내 중앙데파트~영교간 하상주차장 관리권을 딸 수 있도록 주차장 조례안 규정을 개정해 달라" 는 청탁을 받고 같은달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 통과시켰다.

문제의 하상주차장은 총 3백대 주차규모로 연간 7억~8억원의 순익을 올릴 수 있는 대전시내 최고의 '금싸라기 공영주차장' 이어서 대부분의 주차업자와 일반인들이 운영권을 따기 위해 눈독을 들였던 곳. 그러나 黃의원은 당초 산업건설분과위가 마련한 주차장조례안 초안중 관리권 부분에서 민간업자를 삭제, '비영리 공익법인' 에만 관리권을 줄 수 있도록 조례안을 개정.통과시키고 林씨로부터 5차례에 걸쳐 모두 3천여만원의 수익금을 분배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IMF파동 이후엔 잠잠해졌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 유명관광지에서 시찰을 구실로 관광을 즐기던중 꼴불견을 연출한 지방의원들의 추태를 듣는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풀뿌리민주주의' 지켜야 인천 연수구의원 11명중 일부 의원들은 지난해 9월 도시간 자매결연을 추진키 위해 중국 허난 (河南) 성 쉬창 (許昌) 시를 방문하던중 관광버스 안에서 양말을 벗고 길에 가래침을 뱉는등의 행위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서울시의 경우 1기의회 임기가 시작된 95년7월부터 지난해말까지 외유를 다녀온 시.구의원 수는 모두 8백28명. 외유경비로 25억4천9백93만원이 지출됐다.

30년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된 뒤 지방의원을 두번 (91, 95년) 이나 뽑았지만 아직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상당수에 달해 결국 해당 지역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95년 지방선거로 처음 뽑힌 민선단체장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일이 허다했고, 개인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당적을 이리저리 바꾸거나 인사전횡을 일삼는등 수준 이하의 단체장들이 적지않았다.

지방자치 역사가 오래된 외국에서는 단체장을 잘못 뽑아 파산 (우리나라의 경우 자치단체 파산제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음) 하는 사례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경우도 앞으로 단체장과 의원들의 능력 여하에 따라 지역별 주민들의 '삶의 질' 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유권자에 가장 큰 책임 지역일꾼을 잘못 뽑는 것은 현행 선거관련법에도 일부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유권자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이름은 줄줄 외면서 정작 자기 고장의 기초.광역의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 95년 6.27선거 이후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기초의원의 경우 이름조차도 모르고 투표한 유권자가 무려 43%에 달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준다.

그런가 하면 인물 됨됨이보다는 지역감정.학연등에 호소하는 중앙의 계보정치가 그대로 이어져 대전.충남의 경우 단체장 22명중 1명 (유성구청장) 만 제외하고는 자민련이 모조리 휩쓸었다.

이처럼 능력보다는 줄서기가 우선된 선거결과로 인해 단체장들의 자질시비가 끊이질 않으면서 타지역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원성까지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 집계에 따르면 1기 지방의원 (91~95년) 의 경우 의원 재임기간중 각종 비리로 사법처리된 숫자가 전체 정원 (5천1백70명) 의 11%인 5백64명 (1백69명은 구속) 이나 됐다.

대선이 끝나고 새해로 접어들면서 전국 곳곳에서 본격적인 지방선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현역 지방의원들이 경제난을 이유로 '지방선거 1년 연기론' 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폭넓은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공식 선거비용만 3천여억원 (추산) 이 드는등 돈이 적잖게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올바른 지역일꾼들을 뽑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는 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풀뿌리 민주주의 학습장' 이란 정치교육적 효과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국 2백60개 (광역 16, 기초 2백34) 지방의회에서 집행부가 편성한 예산중 10억원씩만 절감한다고 해도 총 2천6백억원의 절감효과가 나타난다.

IMF시대를 거쳐 21세기를 맞이해야할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능한 지역일꾼들을 뽑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급.정당공천 개선돼야 그러기 위해선 유권자들의 각성과 함께 제도적 측면에서도 최소한 두 가지 사항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유능한 사람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원 정수를 크게 줄이되 유급화해야 하고, 둘째 현행 정당공천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와는 속성이 다른 '생활자치' 임을 고려할 때 단체장.의원 모두 정당공천제를 없애든지 아니면 기초의원까지도 정당공천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통일시키는 논의가 있어야할 것이다.

대전 =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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